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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Mar 26. 2020

진달래꽃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산에 진달래가 피면, 피는 게 아니라 피어오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개나리는 봄의 연둣빛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금 더 명랑하게 해 준다고나 할까.  

하지만 진달래는 아직 흐린, 연둣빛이어서 아직 흐린, 봄 아지랑이 때문에 더 흐린 풍경 속에서 붉지만 번지듯이 붉다. 그래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붉은 꽃이 피어오르면,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봄을 찾아 집을 나선다.  

진달래가 흐리게 피어오르지 않고 빛깔 그대로 붉은 날이 있다. 봄비 오시는 날이다. 봄비가 그치면, 진달래는 짙은 화장을 하고 얼굴을 드러낸다. 

짙은 꽃분홍색의 꽃잎 위에 이슬이 맺혀 청초해지던 진달래꽃, 그 빛깔을 따던 날이 있다. 산기슭을 헤매느라 바짓가랑이가 젖는 줄도 모르고. 붉게 옷을 물드는 줄도 모르고. 남자 친구가 군대 가던 날이다. 새벽에 비가 오더니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쯤에는 어느새 그쳤다. 

어젯밤 술로 인사를 하고, 지금쯤 입영열차를 탔겠지, 지금쯤은 머리 짧게 잘랐겠지, 지금쯤은 부대 앞에 섰겠지, 그러면서 산을 올랐다. 

그 꽃을 따다가 술을 담갔다. 남자 친구가 나오는 날 건네주려고. 네 가슴이 타들어갈 때 내 가슴도 그랬단다. 이 붉은 진달래처럼, 내 마음 전해주려고. 

하지만 3년이 지나 꺼내본 술병에는 물이 빠져 허옇게 변한 꽃잎이 둥둥 떠다녔다. 색은 어쩔 수 없더라도 향이라도 나길 바랐는데 진달래 향은커녕 알코올 향도 날아가 버려서,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저 내 추억에 남아있을 뿐. 나도 그런 적이 있었었었지, 뭐 그런 추억 말이다.

술이 제 주인에게 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그 남자 친구가 내 남편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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