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Mar 31. 2020

사치 이야기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싫어하는 게 아니고 무서워하는 거다. 

모든 동물을 다 무서워하는데, 특히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건 정말 불편한 일이다. 

예전에 내가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이 고쳐주겠다고 했다. 자기 집 고양이를 쳐다보라고 하고 내 어깨를 손으로 툭툭 쳤다. 그게 무슨 요법이라던데 잊어버렸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아니면 고양이는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고양이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특성 때문인지 고양이는 조금 덜 무섭다. 

얼마 전에 큰집 이클이가 이뻐서 자꾸 쳐다봤더니, 이 녀석이 내가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어느 순간에 내 옆에 와서 붙었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클이는 고개를 외로 꼬고 나를 안 보는 척 계속 노려봤다. 저 닝겐이 왜 나를 좋아하면서 가까이 가면 소리를 지르나, 하고. 이상한 닝겐이 로고, 함서. 그런 이클이가 이뻐서 자꾸 쳐다본다. 나도 관심 없는 듯 고개 돌려 옆으로 슬쩍슬쩍 본다. 웃음을 참는 게 힘들다.  

    

개는 일단 짖고 달려든다, 상대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그게 대부분의 개의 속성이다. 개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 개와 나의 소리지르기 대회가 열린 듯하다. 내가 소리지르면 더하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걸 멈출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망가면 더 쫓아온다는데 그게 제어가 되면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지. 

그런데 s네 집 사치는 나 같은 사람도 무조건 무서워서 먼저 도망가는, 개답지 못한 개다. 내가 놀라는 것에 자기가 더 놀라 어깨를 들썩인다. 그 녀석이 나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오지 않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사치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무섭다. 사치도 금세 안다. 저 인간이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알면서 무서워하고, 동시에 서로가 궁금해 슬금슬금 쳐다보며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s는 사치가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자신을 사랑해준 존재라고 말한다. 원래는 s도 동물을 무서워했었다. 사치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연히 만난 사치를 통해 s는 그토록 맑은 영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배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랑을 받기만 해서는 그 사랑이 그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그것을 안다. 사치도 s가 보낸 교감으로 충만했으리라.  

그런 사치가 마당이 있는 집으로 간다고 한다. s는 사치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주인을 찾아놓고는, 보낼 생각에 가슴 아파한다. 

 s는, 개를 좋아해서 개를 데려가기는 하지만 반려견으로서가 아니라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라고 말하는 개 주인이라 마음이 아픈 거라고 한다. 개가 개답다는 것은 뭘까. 사람이 사람다운 것도 모르는데 개가 개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 그들의 세상을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s를 보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깊은 안식의 세상이 거기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한다. 그저, s가 슬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고맙다. 모르고 살았을 감정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어서. 

그림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사치야, 잘 가. 잘 살아.



   

매거진의 이전글 목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