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Apr 03. 2020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지나가다 한두 장면 봤고, 어제 우연히 10회를 봤다. 

앞뒤 정황은 모르겠지만 작은 마을의 이야기인 것은 알겠다. 작은 마을, 아침에 누굴 만나면 반나절만에 누가 누굴 만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 많은 작은 마을에 살았다. 학교 다닐 때 누가 누굴 좋아했던 일이 평생토록 따라다니는 작은 마을. 지긋지긋하도록 남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고향을 떠나는 아이들을 보아야 했던, 그럼에도 나갔던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다시 기어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공동체 안에서 이해받고 싶어서 공동체를 찾아갔고,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온전히 이해하는 것, 그래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이어지기보다 사람을 고정화하고 벗어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시 돌아온 아이들은 정해진 기준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또는 지금은 갖지 못하지만 한때 가졌던 그 기준을 누리거나. 

아이들은, 누가 또 다른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사귀다가 다시 또 다른 누구와 사귀는 등의 비밀스런 자기들 속내가 하루도 못가 소문이 나고 엄마들까지 얼굴을 붉혀대는 걸 보면서, 절대 이 마을 안에서 연애는 안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귀 막고 눈 감고 입 막고 살다가 이노무 동네 당장 떠나야지,를 하루에도 열두번씩 해대었는데, 얽히고설키는 징그러운 일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때는 나도 모르게 잊힐 권리 없이 나돌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억이 더 많다. 드라마에 나오는 플리마켓 장면의 따뜻한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 마을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들이 더 많았으니까. 다만 인간에 대한 납작한 인식이 가슴을 짓눌렀던 것뿐이니까.

인간은 그 자체로 다면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특별한 계기 없이도 살아온 방향과 상관없이 다른 것을 지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저주처럼 뇌까리도록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된다. 

 

시골 작은 마을에 작은 서점을 하는(별로 작지는 않더라, 그만큼 큰 서점은 유지비가 많이 들겠지.시골에서도 임대료는 말도 안되게 비싸더라 ㅠㅠ), 소설이 원작이라는, 잔잔한 이야기여서, 게다가 좋아하는 배우 서강준이 나와서 관심을 가졌었다.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온 젊은이들의 꼬인 관계, 몰라도 될 것들을 알게 되는 좁은 지형 등 몇몇 장면을 보고서, 따뜻했던 기억이 아니라 받아들여지지 않던 마음 같은 게 떠올라 시청하기가 불편해졌다. 시골에 대한 판타지를 가진 작가의 작품이로구나 지레짐작하면서 보지 않기로 했었다. 

 

어제, 몇 가지 장면에서 내안에 간절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작은 마을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내가 범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이 드라마에서는 은빛 눈썹을 가진 늑대일지라도 진짜 사람을 만나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지만, 마음을 여는 만큼 변하고 변하게 하고 변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로라도 경험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사이에도 사실은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것을, 사람은 깊은 물속 같아서 자신도 모르는 물고기가 어느 날 헤엄쳐 올라오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깊고 넓은 강이 흘러 섬처럼 사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을 공감하면 좋겠다.  




책을 읽어보면 바로 알겠지만,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이상 그러면 안되겠지. 드라마 끝나고 읽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사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