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을 할 용기
엊그제 새벽 3시 퇴근길 택시 안, 인스타그램을 쓱 열어봤다.
길지 않게 만났던 과거 연인의 소식을, 피드에서 우연히 접했다.
인생의 절반가량을 하나만 성실하게 파온 친구였다. 예전에 그 친구가 이런저런 작업(예술 계통)을 하고 있다면서 말했던 것들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 당시 그 친구의 불안정함이 나는 버거웠고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아쉽지만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짧은 연애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으로 그 친구의 작업물을 우연히 보게 되니 신기했다.
나에게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친구의 눈은 반짝였다. 진심이 보였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사랑한다는 것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도, 모두 멋지고 한편 부러웠다. 그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으니까. 그 친구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쫓으면서 살아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친구야, 드디어 너의 타이밍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 동네였다. 택시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나도 지금 퇴근해요. 나도 딱 이 근처 00로 0길-00에 살아, 매번 퇴근하는 길 막 몇 십km 달려오는 때도 있는데."라고 하면서 웃으셨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내가 택시를 탈 때 기사님이 "00동 가네요?"라고 물었는데, 그 어조 끝에 기분 좋음이 묻어 있던 것 같다. 이야기해 보니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을 거리에 사셨다.
이제 내릴 즈음에 택시 기사님은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서 푹 주무세요~!" 하며 이른 퇴근 생각에 신이 나셨다.
서로 퇴근길 타이밍이 딱 맞았다면서 좋아하는 기사님을 보니, 늦은 퇴근길이지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여러모로 신기하고 기분 좋은 밤이다.
오늘부터 시니어 변호사님 집무실에 하나 둘, 퇴직 인사를 가기 시작했다. 변호사님들 대부분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지만 어떤 변호사님은, '아직 이른 개업이 아닌지', '여기서 조금 더 버티면 시니어도 할 텐데', '개업 시장이 만만치 않다'면서 걱정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금 주눅이 들 것 같을 때, 한 시니어 변호사님 집무실로 갔다. 작년에 우리 로펌으로 오신 변호사님이셨다.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응원한다면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복잡하던 마음들이 정리가 되었다. 그전까지 꼬깃꼬깃 작아지던 마음이 다시 펴졌다.
무엇이든지 변화하려는 선택은 다 옳다고 생각해요.
제가 최근에 가족들이랑 놀러 가서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해봤어요. 다이빙을 하기 전까지 정말 무서웠거든요. 너무 무서웠는데, 아 그냥 뛰고 싶은 마음 하나로 뛰었어요. 뛰고 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별거 아니더라고요.
변화하려는 마음으로 변화하기로 선택한 거라면, 그건 어느 경우에도 옳아요.
살다 보니 그렇다. 생각보다 타이밍이 빨리 오는 사람이 있고, 언젠간 올 타이밍을 위하여 오랜 세월 자신을 갈고닦으며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사람 관계에서도 각자의 타이밍이 서로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연애의 타이밍은 내가 정할 수 없다. 나의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이 내 뜻대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좋은 연애는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좋은 연애의 타이밍은 어느 정도 내 마음에 달려 있다.
퇴사도 그렇다. 퇴사의 타이밍은 각자 다르고, 각자 때가 있지만, 이때 각자의 타이밍은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화하는 용기를 냈다면, 용기를 낸 바로 지금이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다.
어느 경우에도 그 선택은 옳다.
나를 위한 주문*이다. 오늘부터 내 인생 리딩케이스에 다이빙 판결을 추가한다.
주문 : 우리가 아는 주술적 의미 외에 법률용어도 있다. (主文) 판결서에서 결론 부분을 의미한다. ex.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다
이미 다이빙대에서 나의 발은 떠났다.
나의 타이밍을 기다리면서 다시 또 열심히 해봐야지.
내가 용기내지 않지 않았음에도 선물처럼 오는 우연들에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