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하는데, 물 공포증이라고?

나의 깊은 물 공포증

by 청연

첫째가 3살이었을 때,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갔다. 물을 좋아하던 나는 리조트에서 나와 인근 바닷가로 향했다. 그 곳은 만으로 둘러싸인 산호 해변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해변가에서 다슬기 같은 것을 잡으며 놀고 있었다. 물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워 평영까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나는 만으로 둘러쌓인 잔잔한 물가에서 홀로 수영을 했다. 한참, 수영을 하다가 잠시 쉬고 싶어진 나는 물 아래로 다리를 뻗었다. 그런데, 그 때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가며, 나의 몸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손과 발을 허우적대며 남편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남편은 아이와 놀아주느라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물의 위 아래로 두더지처럼 머리를 왔다갔다 하며, 남편을 부르려고 입을 벌릴 때마다, 소리가 나오는 대신 바닷물만 한껏 들이켜졌다. 그 때, 드디어 남편이 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그저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싸늘한 것만 같은 남편의 눈빛을 일렁이는 물 속에서 바라보며, 갑자기 '살아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하다가 이렇게 됐지? 아, 여기서 내가 수영을 하고 있었지! 그렇다면, 나는 수영을 할 수 있눼?!!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는 다리를 아래로 뻗은 채 서서 바둥대던 몸에 힘을 뺐다. 그리고 정신을 붙들고 해변을 향해 서서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 안 되어, 이내 다리가 닿는 얕은물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후들거렸다. 그러나, 헤엄쳐 나올 때 평영 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바라 보기에 쓸데없이 편안해 보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간신히 내가 살아 돌아온지도 모르는 남편은 나를 보자 한마디 내뱉었다.


"너 뭐했냐?"


내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잘 알던 남편은 내가 물장구를 치는 건지 장난을 하는 건지,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됐던 모양이었다.


수영도 할 줄 알고 물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물공포증이라고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물을 매우 좋아하고 수영을 곧 잘 했지만, 다리가 조금이라도 닿지 않는 곳은 절대 들어가지 못했다. 깊은 곳에서는 따라서 항상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한번은 제주도 형제섬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출렁대는 파도에 손만 뻗으면 닿을 법한 물 아래 산호초 위로 스노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스노클을 줍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은 채 손을 아무리 뻗어도 구명조끼의 부력 때문에 닿을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가 않았다. 잠시 구명조끼를 벗고, 조끼를 한 손으로 잡은 채로 머리만 살짝 넣어도 잡을 수 있는 깊이었지만, 나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날 그런식으로 눈 앞에서 새로 산 스노클을 두 개나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나는 물공포증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이 얼굴에 닿는 것을 싫어하는 공포증도 있지만 깊은 물 공포증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깊은 물에서 익사할 것만 같은 공포로 인해, 물 안에서 다리가 안 닿는 순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오고 온 몸이 굳는다는 것이다.


이십대에 처음으로 간 태국 푸켓의 피피섬 호핑 투어에서 유럽에서 온 할머니들이 여유있게 구명 조끼 없이 바다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하와이 호텔의 2미터 수영장 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선 아쉬움은 또 어떤지.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깊은 물 공포증이 있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물공포증을 극복해 보고 싶었다. 그때 그 유럽 할머니들처럼 바다에서 여유있게 선 채로 둥둥 떠있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시작하게 된 첫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에서는 스노클링을 하다가 스노클에 물이 들어왔을 때 물을 빼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일이지만 또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스노클링을 하다가 당황하는 이유는 스노클에 물이 들어왔을 때이다. 그때 당황하면서 엎드려 있던 몸을 세우게 되면 더욱 낭패다. 천천히 숨을 들여마셨다가, 세게 후!하고 내뱉는 연습만 되도 바다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다음으로 배운 것은 피닝이었다. 처음으로 롱핀을 신고 5미터 풀장에 들어섰을 때, 건물 2층 높이의 풀장 바닥이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다행히, 강사님이 내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 구명조끼 없이 천천히 스노클링을 했다. 그러나, 스노클링을 할 때도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붙잡을 수 있는 풀장 가장자리 옆에 붙어있었다. 물 위에서 부이를 붙잡고 있을 때도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부이를 붙잡고 있었다.

처음 배우는 프리다이빙 수업은 한마디로 물 속으로 쉽게 들어가는 연습이었는데, 나는 수업을 하면서 몸을 물 속으로 가라앉히기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후 다이빙 풀장에 자주 나가 연습을 하게 되면서, 깊은 물에서도 내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일주일에 두 세번, 다이빙 풀장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5미터 풀이 친숙해지고, 신기하게도 그곳이 공포스럽고 깊게 느껴지지 않게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한달 만에 깊은 물 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5미터 다이빙풀이 극복되고 나자, 10미터, 20미터, 그리고 그 이상의 깊이는 더 이상 따질 의미가 없어졌다.


두려움의 대상을 피하지 않고 수없이 맞딱들이는 것, 그렇게 얻는 경험과 깨달음, 나를 지켜주는 상대에 대한 믿음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때 두려움의 대상은 어느새 친근한 대상이 되어 있었다.


작년 여름, 일본 미야코지마의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가, 에머랄드 빛 야비지 바다 위에 몸을 세운 채 둥둥 떠 있는 나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나는 그토록 부러워하던 피피섬 호핑투어에서 만난 유럽 할머니들처럼 카메라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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