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을 거의 삼 년 만에 찾았다.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함께였다. 가을의 한복판이다. 단풍 속에 날씨도 쨍하니 라운딩 하기에는 일 년에 몇 개 없는 그런 좋은 날이다. 스코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갔다. 한때는 핸디를 13 정도로 유지했지만, 골프는 안 하면 녹스는 운동이다. 절대 잘 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오랜만에 치는 볼치고는 스타트가 나쁘지 않았다. 보기, 보기, 그리고 세 번째 홀. 감이 괜찮은 데? 이러다가 후반에는 도로 다 살아나겠어~~ 룰루랄라, 페어웨이 위를 걷는데 발바닥 느낌이 이상했다. 내려다봤다. 헉. 왼쪽 신발 밑창이 위에서 반쯤 떨어져 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오래 신기는 했다. 한창 신다가 몇 년 전부터는 손을 놓으면서 고이 신발장에 있던 녀석이었다. 문제는 이건 골프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잃어버려도 다른 공을 쓰면 되는 그런 게 아니잖은가?
카트에 본드가 있을 리도 만무하고, 캐디 자리에 뭐가 있나 두리번거려 보니 반창고가 보였다. 급한 대로 반창고를 밑창과 신발코에 둘둘 감았다. 생각보다 견고하다.
'그래 이 정도면 전반은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겠어. 속은 쓰리지만, 클럽하우스 들러서 비싸더라도 새 신발 사신어야지.'
주말이라 그린피도 만만치 않은데, 신발값까지 나가게 생겼다.
캐디분이 친절하게도 어디서 끈을 찾아왔다. 박스 포장하는 끈 같았는데, 무려 루이뷔통이다. 손님이 놓고 간 끈이 예뻐서 갖고 있었나 보다. 그러더니 벌어진 내 신발 위로 예쁘게 감아주었다.
'회원님, 이 정도면 아주 튼튼할 거예요. 마음 놓고 치세요.'
골프화가 졸지에 루이뷔통 선물 포장 신발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침 라운딩이라 잔디가 젖어 있는 게 문제였다. 반창고는 다 떨어져 나가고 루이뷔통 끈도 헐거워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5번 홀 드라이버 샷. 티샷이 아니라 신발 밑창이 통째로 벗겨져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말이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신발도 상태가 안 좋았다. 양쪽 바닥에서 물기가 올라와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골프는 멘탈 게임이다. 캐디도 웃음을 참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아흐... 으흐흐흥 회원님. 죄송해요. 크크 크으윽. 크허헉. 죄송해요. 그런데 이런 건 처음 봐서. 으흐흥."
전반은 결국 망했다. 새 신발을 사러 전반이 끝나자마자 클럽 샵으로 뛰어갔다. 어라. 불이 꺼져 있는 게 아닌가? 으응? 프런트에 물어보니 잠깐 식사하러 갔다고 한다. 아, 되는 게 없는 하루네. 그래도 잠시 후에 샵 주인장이 왔다. 신발을 사러 왔다고 하니 얼굴이 환하다. 나는 평소에는 절대 사지 않았을 고가의 신발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반은 잘 쳤겠다고?
골프는 그런 운동이 아니다. 무너진 멘탈은 수습이 쉽지 않다.
오늘 산 신발은 당근에 내놓을까 한다.
"1회 착용, 상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