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단 카페가 생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프랜차이즈 커피들의 틈바구니에서 차별화된 맛의 커피를 고객들에게 내어놓는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큐그레이더라는 원두 감별사들이 커피를 평가하는 과정을 커핑(cupping)이라 하는데, 이를 통과한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한다. 한국 최초의 큐그레이더는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대표다. 이후 많은 큐그레이더들이 활동 중에 있다. 향미, 바디, 뒷맛, 밸런스와 같은 총 10가지 항목을 면밀히 검사하여 80점이 넘는 커피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도 퍼블릭 커핑에 참가해 본 적이 있다. 바리스타들이 각자 커피를 맛보고 썰을 푸는데 그 어휘력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로스팅 기계 가져다 놓고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내어 놓는다고 저절로 스페셜티 커피 하우스가 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공통분모를 모아보자면, 로스팅이 라이트 한 원두가 많다. 약배전 커피라고 한다. 그래야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이 잘 살아있다. 물론 강배전 한 다크 커피도 내어 놓는다. 찾는 고객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더라도 쓰기만 한 스벅의 맛은 아니다. 보통 드리퍼로 푸어 오버해서 내려먹는다. 그리고 로스팅된 날짜가 길지 않다. 열흘만 지나도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본다. 무조건 홀빈으로 보관하다가 먹을 때 갈아야 한다. 신선하게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산지가 특정 지역으로 오가닉인 경우가 많고, 원두는 고품질이다. 구매자는 생산자와 독점 계약을 통해 원두를 구매하고 블렌딩 하거나 싱글 오리진 커피로 만들기도 한다.
스페셜티 커피 하우스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가장 목 좋고 임대료 비싼 자리에 블루보틀 같은 카페가 있지만, 사실 스페셜티 카페의 시작은 미약했다. 미국 북서부 오레곤 주에 포틀랜드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거기서 시작된 "스텀프타운(Stumptown)"의 시그니처 커피는 헤어 벤더(Hair Bender)다. 가게를 처음 오픈한 곳이 동네 골목 미장원이었다. 스텀프타운의 창업자인 두웨인 소렌슨은 아버지가 소세지 가공업자였다. 유기농 재료만을 취급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유기농 커피원두를 취급하는 등 특별한 카페를 만들려고 했다. 스텀프타운은 지금도 매장이 전 세계에 10개 정도밖에 안된다. 특이한 점은 도쿄에 매장이 있다.
뉴욕의 스페셜티 커피하우스인 "조 커피(Joe Coffee)"를 가본 적이 있다. 고단한 출장 중의 쉼표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라테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구석에 있는 매장은 비좁고 자리도 몇 개 없었다.
빨간 커피봉지로 유명한 시카고의 "인텔리겐치아"는 다크한 디아블로 블렌드가 맛이 그만이다. 인텔리겐치아는 처음에는 시카고 레스토랑들에 커피 원두를 공급하던 도매업자였다.
스페셜티 커피의 애플이라고 하는 "블루보틀"은 어떤가?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은 원래 스트리밍 서비스 스타트업에 다니다가 잘렸다. 퇴직금으로 창업한 커피가 블루보틀이었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문을 열었는데, 푸어 오버 즉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했다.
사실 미니멀해 보이는 블루보틀의 로고와 매장의 컨셉은 일본 다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커피 내리는 행위를 일종의 예술로 보는 "깃사텐"이라는 일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카페 앞에는 푸른 병만 남기고 아무것도 없는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간결함과 겸손함을 추구하는 교토의 "간반" 문화를 차용한 것이다.
사실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카페라고 하기에는 이미 대기업이다. 2017년 유명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네스프레소로 유명)에 지분 68%을 팔아치웠다. 매도 금액은 4억 2500만 달러.
사진의 커피들은 내가 직구로 구입한 것이다. 저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를 주문하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 마셔볼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다. 다만, 안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배송비가 아까워서 많이 주문하게 되는데, 오래 보관할수록 맛이 떨어지니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된다. 그래서 어차피 다 못 마실 거 아는 분들에게 커피 원두를 소포장해서 나눠 드리곤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요즘들어 우리나라의 스페셜티 커피점 공부를 좀 해보고, 이런저런 신선한 원두를 사 먹어 보는 데 충분히 맛이 좋다는 점이다. 위에서 봐서 느꼈겠지만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라고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가 직구를 잘 안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