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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Aug 01. 2022

158전 159기-PGA 강성훈 프로의 우승 현장 참관

미국 PGA 투어 참관기 (1)

2019년 5월이었다. 텍사스 달라스로 2주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 미국에 잠시 살 때도 가보지 않은 텍사스다. 땅 덩어리는 알래스카 다음으로 크고 본토에서는 가장 큰 주다. 텍사스 바베큐, 풋볼팀 달라스 카우보이스나 셰일가스 붐 정도가 텍사스 하면 떠오르는 것들 아닐까? 외환은행 먹튀로 유명한 론스타 펀드가 달라스에 있기도 하다. 론스타(Lonestar)는 말 그대로 텍사스의 외로운 별이고 텍사스의 상징이다. 지금의 텍사스 땅이 19세기 초에는 멕시코 것이었는데, 여기 사는 미국인들이 독립 전투를 일으킨다. 알라모 전투다. 중과부적의 싸움이었으나, 용맹심은 대단했다. 깃발에 별 하나를 그려 넣었다. 200명이 안 되는 전력이 열배 가까운 멕시코 군을 맞아 거의 전멸할 때까지 싸웠다. 론스타의 유래다.


텍사스 사람들을 "텍산(Texan)"이라고 부른다. 보수적이면서도 독립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와도 종종 비교된다. 자동차 범퍼에 "DON'T CALIFORNIA MY TEXAS"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텍산들이 있다. 캘리포니아가 정치적으로 민주당에 가깝고 규제 친화적인 주라면, 텍사스는 공화당에 가깝고 사업하는 입장에서 규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둘 다 주별 GDP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미국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 주의 미래에 대하여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인들은 텍산들에 대하여는 유별나다고 느끼면서도 그들의 애국심에 대하여는 의심하지 않는다.


텍사스에서는 뭐든지 컸다. 집이며, 빌딩, 하다못해 식당까지 컸다. 음식을 시키면 양이 적어서 불만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텍산들은 덩치도 컸다. 전 미국 연방 예금보험공사 사장이었던 실라 베어가 '정면돌파(Bull by the Horns)'라는 제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회고록을 냈다. 책에는 격려차 달라스 지사를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베어 사장은 직원들이 하나 같이 덩치가 크고 대식가였다고 회고한다. 부실금융기관 정리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지사다 보니 일이 힘들어서 많이 먹는 것 아닐까 하는 친절한 상상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출장 첫 주가 지나고 주말이 다가왔다. 마땅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라모 전투가 벌어진 샌 안토니오를 가볼까 아니면 휴스턴에는 무려 26차선 도로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나 경험하러 가볼까 했다. 같은 주였지만 지도를 보니 역시나 멀었다. 중고 티켓 앱 "Stubhub"을 켜고 주말에 갈만한 이벤트가 있는지 살폈다. PGA 골프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ATT 바이런 넬슨(Byron Nelson)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었는데, 최종 라운드 전날 현재 우리나라의 강성훈 선수가 선두였다. 부랴부랴 대회장을 검색해보니 숙소에서 우버 택시로 불과 30분 거리였다. 텍사스임을 감안하면 이건 정말 가까운 거다.


아침 일찍 트리니티 포레스트 골프장을 찾았다. 걸출한 현역 선수 "조던 스피스"가 텍사스 출신인데, 우승권에서 멀어지다 보니 현지인 갤러리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교민들도 그다지 안보였다. 전날 폭우가 내린 탓도 있어 보였다. 나로서는 호젓하게 관람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1번 홀로 향했다. 우승컵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탈컵인데 비 갠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어서 그런지 더욱 반짝거렸다. 대회를 알리는 사회자가 나와서 마지막 조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강성훈 선수는 현지에서는 "썽 캥"으로 통하고 있었다. 강프로가 등장했다. 면도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피곤함과 초조함이 모두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2011년에 미국 PGA 투어에 데뷔했지만, 158경기 째 무관이었다. 중간에 2부 리그로 내려가는 아픔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오랜 기간 출전을 이어오다니 끈기가 대단했다.

우승 트로피(142만 달러, 대충 18억원)


티잉 그라운드에 선 강성훈 선수

강성훈 선수는 키가 170이 갓 넘을 것 같은 작은 체구이지만, 근력운동으로 다져진 상체가 다부지다. 스윙은 전형적인 파워 히터다. 스윙 아크를 느리면서 가파르게 가져가는 대신에 다운스윙 스피드는 빠르다. 임팩트 순간 온 힘을 다해서 때린다. 브룩스 켑카를 실제로 봤는데, 키도 컸지만 온몸이 근육이었다. 파워가 대단했다. 이 틈바구니에서도 강프로의 거리가 다른 선수들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교민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몇 되지 않았고 다들 얌전했다.

내가 대놓고 응원하기로 했다.


"강성훈 화이팅!"

매 티샷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현지 갤러리들이 흠칫 놀랜다. 어느 갤러리는 못내 궁금했나 보다. 나에게 오더니,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하고 묻는다.


살짝 머쓱했다.

"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말로 응원하는 겁니다." 화이팅이 말이 영어지 영어권에서는 이런 맥락으로 쓰지도 않고 이제 우리 말이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팔짱끼고 관람만 할 수는 없었다.

텍사스 어느 골프장에서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한국인 골퍼가 우승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58번의 실패 후에 찾아온 우승의 기회다.

그의 샷 하나하나가 뭉클했다. 얼마나 꿈꾸어왔던 시간이겠는가?


중반부터는 강성훈 선수도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나를 알아보고 내가 응원해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상식 직후 강프로의 싸인, 사진 속에 강프로의 아내와 아이가 보인다.



시상직 직후 강성훈 선수와 잠시 인사를 했다. 경기 내내 응원해 줘서 감사했고, 내가 화이팅을 외쳐준 게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저 자리에서 모자에 싸인을 받은 이는 나와 연세 지긋한 우리나라 어르신 둘 밖에 없다. 가보로 간직하련다.


요즘은 여러 이유로 라운딩을 꽤 오랜 기간 못 나가고 있지만, 골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2019년 5월 13일 일요일, 깜짝 선물 같이 찾아온 텍사스 달라스 골프장에서의 하루는 내 기억 속에 잊지 못할 시간으로 박제되었다. 아쉽게도 강성훈 선수가 그 이후로 우승 소식이 없다. 그만큼 어려운 PGA 투어 우승이다. 조만간 우승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강성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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