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눈 오는 밤에@정읍신문
12월이다. 한 해가 어김없이 간다. 곧 성탄절이다.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회사를 떠나는 상사나 동료, 후배들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최근에는 확실히 과거보다는 이직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떠나는 이들을 보며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한다.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전적 보상이 부족한 경우다. 자신의 노력에 비해 내가 지금 받는 급여가 낮다고 느껴지면 더 나은 보상을 찾아 떠난다.
환경적인 측면도 퇴사를 결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 비효율적인 업무 시스템, 상사의 비상식적인 관리 스타일 등이 복합적으로 엉키면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임계치를 넘어 개인의 삶이 피폐해지는 지경까지 오게 되면 나갈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다. 월급이 다가 아닌 것이다. 내가 하는 업무가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에, 내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닌 것만 같고, 내가 중요하지 않은 직원이라고 느낄 때도 퇴사의 욕구는 커진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내가 성장할 기회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종사하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거액의 연봉을 받거나 성과급을 받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다. 어디에 근무하는 누가 한 해 동안 얼마를 벌었더라 하는 소식도 들린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액수가 많다. 고백한다. 순간 내 머릿속은 이랬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아니 그 사람 급여의 절반이라도 받는다면,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이를 꽈악 물고 버틸 것 같다. 닥치고 어떻게든 헤쳐나갈 방법을 찾았을 것도 같다.
다행스럽게도 이내 정신을 차린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월급이 다가 아닌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벌게 되면, 칭찬이나 인정 같은 비금전적인 측면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내가 하는 일이 적절하게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정기적으로, 또는 자주 받는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직장에서도 오래 머물 수 있는 법이다.
최근의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인정을 받는 직원은, 앞으로 1년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33%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왜 관리자들은 칭찬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걸까? 시간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비용 부담도 없다. 간부급 직원이 되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한 해가 가고 있는 지금, 함께한 나의 팀원들에게 칭찬의 메모를 남겨본다.
K: 바로 아래 후배가 믿음직하고, 알아서 척척 모든 일을 한다면? 한마디로 감사한 일이다. 국내 최고 학부와 유수의 로스쿨을 졸업했음에도 겸손하기까지 하다. 나는 그래서 복이 많은 상사다.
L: 내 팀원으로 조인한 지 반년이 되어간다. 내 팀원이 된지 얼마 안 되어 승진을 했다. 직장인이 승진을 몇 번이나 하겠는가? 다시 한번 축하한다. 글자들로 가득한 밋밋한 페이퍼를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놀라운 시각화 능력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 준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과 재주이기에 탄복한다.
L: 어느 상사나 마찬가지 겠지만 나도 일 잘하는 후배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어떤 일이든 빨리 끝내버리는 후배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배의 태도(attitude)다. 태도가 좋은 친구가 직장에서는 더 롱런하는 법이다. L은 바로 이 태도가 훌륭한 후배고 특별한 자질이다. 롱런할거다.
A: 대형로펌 출신으로 능력이 출중하다. 국내파임에도 영어가 유창하다. 다만, 하반기 들어 건강이 좋지 않다. 진심으로 쾌유를 빈다. 상반기에 2명 이상의 몫을 했으니, 잠시 쉬어가도 무방한 후배다. 새해에는 건강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L: 연차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페이퍼를 매끄럽게 쓴다. 사실 놀랬다. 잡다하고 궂은일도 도맡아 하고 있는데, 미안할 때가 많다. 쑥스러워하는 특유의 웃음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 조금만 버티면 새로운 후배에게 넘겨줄테니 잘 참아주기를.
L: 가장 어린 후배다. 평소 조용한 편이다. 나한테만 수다를 안 떠는 건가? 다른 이들과는 조잘조잘 이야기 잘 하겠지? 직장생활을 우리 회사에서 처음 하는 것이라서, 걱정을 했었다. 가만히 보니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이다. 역시나 지금껏 너무 잘해주고 있다.
오늘 송년 팀 회식을 했다. 그 자리에서는 낯간지러워 못다한 말을 위와 같이 적어본다.
나의 팀원들, 2024년 한 해, 너무나 고마웠어요. 내년에도 함께 성장하며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가길 기대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