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육상 멀리뛰기나 높이뛰기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 전에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짧은 뒷걸음질은 단순히 물러서는 게 아니다. 탄력과 반동으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정인 셈이다.
프랑스어에 "르퀼(recul)"이라는 단어가 있다. ‘후퇴’나 ‘뒷걸음질’이라는 뜻인데, 특히 "프랑드르 뒤 르퀼(prendre du recul)"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정신적 거리를 두는 걸 의미"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문이 있다.
"Il est important de prendre du recul avant de prendre une décision importante."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문제가 닥쳤을 때, 더구나 시간에 쫓길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즉시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잠깐 멈추고 뒤로 물러서는 게 더 나은 선택일 때가 많다. 뒷걸음질은 겉으로는 소극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도망치거나 문제를 미루는 것이 아니다. 잠깐의 멈춤과 심호흡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마치 멀리뛰기 선수가 도약을 준비하듯, 더 나은 결과를 위한 필수적인 준비일 뿐이다.
순간의 뒷걸음질, 즉 prendre du recul은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특히나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눈앞의 나무만 보며 나아가는 대신 잠시 멈춰 숲의 전경을 살피는 태도가 중요하다. 차분히 상황을 분석하고 방향을 조정하면 더 나은 선택과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 며칠 극심한 혼란을 일으킨 당사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특히나 아쉬운 부분이고, 참으로 씁쓸하다.
숲은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다. 내가 숲 밖으로 나와야 숲 전체를 볼 수 있다. 살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순간 멈추고 잠시 심호흡을 크게 하며 르퀼(recul)의 지혜를 떠올리는 것이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기 위한 첫걸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