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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Aug 06. 2022

꿈의 무대, 마스터즈(Masters) 대회 참관(2부)

미국 PGA 투어 참관기 (3)

애틀랜타에서 함께 라운딩을 나가던 동갑내기 J교수가 있었다. 안식년 차 미국에 온 것이었다. 나보다 체구는 작았지만 골프 실력으로는 몇 체급 위였다. 나는 골프를 좋아하지만 로스쿨 공부에 허덕이다 어쩌다 라운딩을 나가다 보니 실력이 더디게 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와의 경기에서 이겨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동갑이었지만 서로 말을 놓지는 않았다. 그는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졌다. 부부동반으로 라운딩을 나갈 일이 있으면, 나는 아내의 플레이에 잔소리나 핀잔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반대로 그는 나긋나긋했다. 늘 상냥하게 자기 아내에게 코칭을 해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같이 라운딩하는 더운 어느 여름날 아내한테 맥주를 안 챙겨 왔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다음번 자리에 맥주를 한 봉지 가득담아 가져왔다. 나한테 너무 얻어먹기만 했던 것 같다고 말이다. 충청도 시골 출신 촌놈과 서울 남자의 어쩔 수 없는 갭이었던 가? 여하튼 부끄러웠다.


2017년 4월이었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갈 때쯤 내가 말을 꺼냈다. 마스터즈에 동행할 생각이 있냐고 말이다.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가야죠. 그 정도 비용은 감수할 만한 이벤트 아닌가요?"

그는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연습 라운딩에 가기로 했다. Stubhub 앱에서 각자 500불 가까이 주고 중고 입장권을 샀다.

아내는 티켓 가격을 지금껏 모른다. 방금 아내가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는지 확인해 봤는데 안 하고 있다!

연습 라운딩을 간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본 라운드 입장권이 너무 비싸다. 양심상 천불 넘는 티켓을 지를 수는 없었다. 또한 오거스타 내셔널은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프장 부지가 원래 꽃나무 묘목밭이었다고 한다. 대회 무렵 철쭉(Azalea)과 여러 꽃나무들이 만개한다. 중계화면에서 초록의 양탄자 같은 페어웨이, 지저귀는 새소리, 만개한 철쭉의 3박자가 일체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을 한번 쯤 보았을 것이다. 이런 코스를 자유롭게 걸어 보는 건 연습 라운딩에서만 허락된 자유다. 미스 샷으로 절로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아멘 코너(Amen Corner)" 홀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휴대폰 지참이 본 라운딩 중에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아예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패트런들이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마스터스만의 방침이다.

핸드폰 반입이 금지되다 보니 안에는 이런 공중전화가 있다.

혹시 마스터스 경기 중에 핸드폰으로 촬영한 샷들이 있다면 규정 위반이다. 그러니 인증샷을 남기고 싶다면 연습 라운드에 갈 수밖에 없다. 출전 선수들의 자유로운 연습 장면을 보면서, 운 좋으면 사인을 받는 것도 연습 라운드에서만 가능하다.


J교수가 고맙게도 차를 가져가고 운전도 해주기로 했다. 그의 시에나 밴에 올라타 설레는 마음으로 오거스타를 향해 달렸다. 그 역시 2005년의 마스터즈와 우즈의 샷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스터즈 명장면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어느새 꿈에 그리던 오거스타 내셔널이었다. 이 골프코스를 소개하는 좋은 영상이 있어 소개한다. 마스터즈 주최 측에서 제작한 4분짜리 영상이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그라운드를 걸어봅시다 (Walk the Grounds of Augusta National)."이다.

Walk the Grounds of Augusta National

잔뜩 찌푸린 날씨가 아쉽긴 했다. 들어갔더니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눈에 익은 선수들이 연습 중이었다. 한때를 풍미한 "어니 엘스"였다. 퍼팅 연습을 하는 건 누군가 봤더니 호주의 "아담 스콧"이었다. 벙커에도 누군가 있는데 많이 본 듯한? 아..."조던 스피스"였다. 이런 대단한 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골프장 컨디션은... 일 년 내내 마스터즈 대회만 준비한다는 것이 허풍은 아니었다. 우리 둘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페어웨이와 그린 컨디션이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상태였다. 골프장 전체에 전용 배수 시스템이 있어서 비가 얼마든지 내려도 플레이에 영향이 없다는 오거스타 내셔널이었다. 비가 전날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잔디가 축축하지 않아 신기했다. 걸어 다니는 내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16번 홀 우즈가 섰던 그 자리

한참을 걸어 2005년의 16번 홀 우즈가 섰던 그 자리에 왔다. 우리 둘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갤러리도 선수도 없는 고요한 풍경이었으나, 그날의 그 샷을 머릿속으로 재현해보니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돌발변수가 터졌다. 들어와서 몇 시간 즐기지도 않았는데 폭풍이 올 우려가 있으니 모두 나가라고 안내방송이 나온 것이다. 아니 내 500불! 마스터즈의 다양한 기념품들, 초록색 모자와 파라솔 우산, 폴딩 체어를 벼르고 있었는 데 천천히 나갈 때 사려고 미루고 있었다. 마스터즈 대회 기간 이곳 골프장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오자 다들 기념품 샵으로 몰려 난리였다. 나는 겨우 모자하고 우산을 건졌다.


2017년의 마스터즈 대회 스코어 보드의 맨 위에는 스페인 출신의 가르시아가 올랐다. 저스틴 로즈와 연장전까지 갔던 명승부였다. 우승 퍼트 후 그가 주저앉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흔들던 장면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해마다 날아오는 패트런 추첨 안내 이메일에 꼬박꼬박 응하고 있다. 매번 떨어지고는 있지만 당첨되면 그 핑계로 오거스타 내셔널을 다시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말이다. 당첨되고 나서 고민해도 된다. 못가도 괜찮다. 중고로 되팔아도 꽤 괜찮은 장사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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