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뷴 Aug 08. 2022

우리들의 하버드 병

혜민 스님의 활동 재개와 우리 사회의 하버드 맹신에 대하여

얼마 전 법보신문(불교계 종교지)에 2년 여만에 다시 등장한 이름이 있었다. "혜민 스님"이었다. 풀소유 논란으로 활동을 접은 후 조용하다 싶었는데, 최근에는 독일과 폴란드에 가 있는 듯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지원 현장기"라는 기고문을 보냈다.


풀소유 논란은 무엇이었던가? 잠시 회고해본다.


이는 2년 전 방송에서 삼청동에 위치한 그의 집이 공개되며 시작되었다. 사실 그가 사는 집은 언론에서 비꼬듯 아방궁이라고 까진 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스님이라고 그런 깨끗하고 번듯한 집에서 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풀소유 논란은 단순한 가십일 것으로 생각했다. 혜민은 세상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유명세를 탄 것으로 안다. 그에 대하여 잘 모르던 차라 호기심에 그의 강연을 찾아보았다. 그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승려로서 수행과 깨달음은 어느 정도인지 기대되었다. 내가 너무 기대가 컸나? 좀 실망스러웠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하는 것과 애초에 어려운 이야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안되어 있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화법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혜민스님이 전하려는 내용에 깊이가 있는지는 솔직히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방송 중에 명동성당이 보여서 사무실을 구했다는 얘기나, 명동성당 앞 벤치에 앉아 성스러운 기운을 느낀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특히나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그를 끊임없이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나, 나는 하버드라면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보는 우리 사회의 맹목성에도 잘못이 있다고 본다. 혜민스님은 자의든 타의든 이를 활용한 것이고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들에는 눈을 감아버린 것이 아닐까?


하버드와 관련한 그의 학력을 잠시 살펴보자. 혜민은 한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인이고 그의 미국 이름은 "라이언 봉석 주"이다. 당연히 군 복무도 하지 않았다. 대학은 버클리대를 나왔다. 졸업 후 석사 학위 차 하버드 대학원에 가서 종교학 석사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프린스턴대에서 받았다. 따라서 그의 최종 학력은 프린스턴대 박사다. 우리는 보통 최종 학력을 얘기하지 중간에 다닌 학교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하버드 출신에 대하여는 중간에 다닌 학교였더라도 상관없이 그것만 유독 강조한다.


혜민이 다닌 버클리, 하버드, 프린스턴 모두 미국에서 인정받는 수준 높은 명문대(prestigious university). 입학 허가를 받기 쉽지 않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미국의 최고 대학은 마치 하버드 하나만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는 종합대학이긴 하나  분야에서 일등인 학교가 아니다. 최근 각광받는 테크 분야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까운 "스탠포드" 하버드보다 알아준다. 취업의 용이성과 연봉 측면에서도  쳐준다. 로스쿨 탑은 하버드가 아니다. "예일"이다. MBA  어떤가? "유펜, MIT, 시카고"  쌍벽을 이루는 학교들이 많다. 철학, 문학과 사회비평으로는 유럽의 대학이 장구한 역사와 깊이를 자랑한다. 하버드가 입학하기 어려운 곳임은 사실이나, 대학원은 학부보다는 상대적으로 입학이 용이한 점을 또한 많이들 간과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 하버드를 나왔다고 하면 미국인들도 "좋은 학교 나왔네!" 하면서 인정해 주는 것을 봤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하버드 졸업장이 인생의 여러 관문에서 프리패스처럼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하버드에 대하여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높다. 하버드 병이라고  정도로 말이다.


하버드 병이 만연함을 보여주는 내 경험을 소개한다. 나는 미국의 로스쿨을 나왔는데, 입학 전 검색해 본 바로는 모교를 "남부의 하버드"라고 치켜세우는 표현이 많았다.


"남부의 하버드? 숨겨진 보석 같은 그런 학교였어? 거기서 날 받아주었다고? 나이스!"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갔더니 이는 한국의 유학원에서나 쓰는 말이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모교가 남부의 하버드라는 얘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표현을 쓰는 현지 언론이나 지면도 없었다. 미국 학생들끼리 그런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굳이 찾자면, New Ivy라고 해서, 신흥 명문대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들의 하버드 병이 남부의 하버드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서점에서 "하버드"를 검색하면, 하버드라는 키워드로 시작하는 각양각색의 책들이 있다. 이들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저자들이 하버드 교수들이 한 이야기들, 하버드 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확신에 찬 채 하버드 이야기라며 풀어놓는다. 문제는 그들이 하버드에서 수학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하버드를 다녔어야만 하버드 관련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처에 대하여 신뢰하기 어려운 책이 넘쳐난다. 각주 하나 없는 책이 부지기수다. 짜깁기 한 흔적 또한 쉽게 보인다. 안타깝게도 서점에서는 이런 하버드 팔이가 꽤나 먹히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하버드라는 맹신을 이제는 벗어났으면 한다. 스펙 만능주의와 대학 서열화에 따른 학벌 중시의 폐해가 심각하다. 여기에 하버드를 보태봐야 우리만 병들 뿐이다. 내가 이렇게 짱돌 하나 던져봐야 겨우 작은 파문 하나를 만들고 가라앉아 버린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내 아이들의 세대까지 이런 구태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아빠 생각은 이렇다고 얘기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버드 팔이 책은 너무 믿지 말아라"

"하버드 나왔다는 걸 유독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또 그런 언론이 있다면 경계하는 게 좋을 거야"


현재 혜민스님의 SNS는 다 막혀있다. 유튜브 댓글도 막아 놓았다. 하버드를 등에 업고 세상의 찬사를 받을 때는 달콤했으나 지금은 자신에게 등 돌린 세상이 두려운 걸까?  


혜민스님은 재기를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신호탄이 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봉사일 수도 있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글이 조심스럽다. 나는 저 기고문이 진심이었으면 하고, 그가 풀소유 논란을 딛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다만, 하버드 출신이 아닌 그저 승려 혜민으로서 그래 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꿈의 무대, 마스터즈(Masters) 대회 참관(2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