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 30년 넘게 ‘Athletics Australia'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단체가 있다. '호주 육상협회'다. 이 단체가 올해 초 '대담한 새로운 정체성'을 찾겠다며 조직명을 바꿨다. 'Australian Athletics', '호주 육상협회'다.
협회의 CEO인 사이먼 홀링스워스는 이를 두고 '이것은 단순한 새 이름이 아니다. 호주인들에게 육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정립하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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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벅스가 고객의 커피컵에 "당신은 멋져요", "오늘을 즐기세요" 같은 메시지를 적어주도록 직원들에게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스타벅스가 근래 실적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메가커피가 이제 점포 수로는 스타벅스를 넘어섰다. 중국은 이미 토종 브랜드 루이싱 커피(Luckin Coffee)가 시장 1위를 가져갔다.
타개책이 절실한 스타벅스의 새로운 대표로 '브라이언 니콜'이 선임되었다. 니콜은 멕시코 음식 프랜차이즈인 치폴레(Chipotle) CEO 출신이다. 지난 3년 동안 네 번째 스타벅스 CEO가 되었다. 그는 당연히 지금의 스타벅스를 만들어낸 '하워드 슐츠'를 떠올렸을 것이다. 슐츠는 늘 강조해왔다. 스타벅스는 커피만을 파는 곳이 아니고,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회사라고 말이다.
고객들은 바리스타들이 컵에 그린 웃는 얼굴이나, 단골 고객이면 "다시 오셨네요!" 같은 메모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우선, 이 메시지를 일일이 적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짜장면 먹고 나오면서 집어드는 포춘 쿠키하고는 다르다. 포춘 쿠키는 바구니에서 아무거나 집어서 들고 나와, 좋은 말 대잔치 중의 하나를 읽고 그냥 버리게 된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바리스타가 고객을 상대로 일일이 다른 대응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 아닌가? 가뜩이나 스타벅스 음료에 개인이 변경을 요청할 수 있어서 음료 제공이 늦어지고 있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홈페이지에서 "스벅은 17만 가지의 변형이 가능해요~"라고 홍보 중이다. 유튜브에는 이걸 조롱하는 밈들도 많다.
신임 스타벅스 대표의 전략은 직원들도, 고객들도 반기지 않을 '가짜 감성'이다.
무엇보다도 이 메시지는 진정성이 없다.
"멋진 손님, 오늘은 더 멋지시네요."라고 바리스타가 적은 들, 일단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직원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서로가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적은 커피를 받고, '음 그래 오늘은 좀 행복해지자!' 할 고객이 몇이나 될까?
나야말로 몇 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는데, 내가 스타벅스에서 원하는 것은 좀 더 나은 맛의 커피(스타벅스 커피는 갈수록 맛이 없어지고 있다)다. 기왕이면 그 커피를 신속히, 소란스럽지 않게 받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다.
물론 어떤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진정성 있게 나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말인지도 중요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 있다. 바쁘게 걸어가는 거리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터져 나온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얼마전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이 지긋한 분이(누군지는 모른다) 동승한 다른 이들을 향해 "예수 믿으세요!"해서 움찔 놀라기도 했다. 이를 듣고, '맞아, 이제 교회도 가고, 하느님도 믿어봐야겠군!' 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천주교 신자다)
'말의 성찬(盛饌)'을 들어보았는지?
진수성찬처럼, 말로 한상 가득 차린 밥상이다. 말을 지나치게 늘어놓거나, 알맹이 없이 화려한 언변만 구사하는 경우에 쓴다. 우리는 마케팅과 기업 홍보의 홍수 속에서 매일 '말의 성찬'을 마주한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진정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호주육상'이 '호주육상'이 되어버린 것도, '스타벅스 메모'도 진정성 없는 말의 성찬이다. 모름지기 말에는, 그리고 변화의 시도에는 진정성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2025-02-17자 FT 기사를 읽고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