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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지키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

by 스티뷴

그림: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이탈리아 산마르코 수도원 (가브리엘 천사가 날아와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전하는 장면)


프랑스에는 공쿠르상이 있다. 노벨 문학상, 맨부커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작품이 이 상을 수상했다. 2023년 그 영예를 안은 소설이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Veiller sur elle)』 이다. 600쪽이 넘는 분량 때문에 완독 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그녀, 아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 “비올라”라는 존재


소설의 원제, “veiller sur elle”를 잠시 보자. 제목의 veiller는 불어로 ‘돌보다’, ‘지켜보다’라는 뜻이다. sur는 돌봄의 대상 앞에 붙는 전치사, 그리고 elle은 그녀를 뜻한다. 말 그대로 “그녀를 지키다”이다. 즉, 그녀라는 지킴의 대상이 있고, 그녀를 지켜보는 주체가 있다. 제목은 주인공 미모와 비올라 사이의 관계를 미리 말해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미모는 키가 한참 작아 난쟁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또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비참한 처지의 미모이지만, 천부적인 조각 재능을 지니고 있다. 비올라는 이탈리아 명문 오르시니 가문의 상속녀다. 비올라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물이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미모와 비올라, 둘은 어려서부터 친구가 된다.


비올라는 자유를 갈망했다. 그 갈망은 강제 약혼식장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약혼식이 한창일 때, 비올라가 새처럼 날겠다고 외치며 창밖으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기성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여자를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 속에서, 단 한 사람 미모만이 그녀를 미치광이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본다. 반대로 비올라는 글을 모르던 미모에게 책과 지식이라는 세계를 선물해 준다. 오르시니 가문의 서재에 있던 방대한 책을 미모에게 읽힌 것이다. 이후 미모가 겪는 내면의 성장과 변화는 결국 비올라라는 존재가 불러일으킨 기적 같은 사건이다.


피에타와 또 다른 “그녀“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즉시 나를 덮친 것은
눈앞에 펼쳐진 색채들, 그리고 결코 본 적 없는 성모의 얼굴이었다.” (293쪽)


미모가 수도원의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는 비올라가 빌려준 책 속에서만 보았던 성모의 얼굴을 현실에서 처음 마주한다. 이 장면은 소설의 깊은 층위를 암시한다.

『그녀를 지키다』의 ‘그녀’는 비올라이면서, 동시에 “피에타상이자, 성모 마리아”다. 미모는 자신의 이름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처럼 미켈란젤로에 견줄 만한 조각가로 성장한다. 미모의 마음 깊은 곳에는 피에타가 있다. 피에타를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조각이다. 실제로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빠진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승승장구하던 미모는 자신만의 피에타를 조각해 필생의 역작으로 삼기로 한다. 그리고 결국 만들어 낸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철저히 외면한다. 비올라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모는 스스로를 유폐한 채 지낸다. 그가 비올라의 기억과 유산을 지키는 마음은 예수를 품은 성모의 고통과도 겹쳐 보인다. 비올라는 미모의 예술과 삶을 지탱한 영적 원형이었다. 미모가 지키려한 그녀는 피에타이며, 비올라를 모태로 한 미모의 “예술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에 있다.


헌신: 10년 넘은 약속을 지키는 남자


미모는 비올라와 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을 잊지 않는다. 1918년 6월 24일 “10년 뒤에 여기에서 다시 보자”라고 했던 비올라와의 약속을 10년 뒤 어느 날, 그는 불현듯 떠올린다. 뛰쳐나간 그는 자동차로 3일을 달려 그녀를 만나러 약속의 장소로 간다. 비올라도 잊지 않고 그날 그 장소에 나온다. 누구라도 한때 간직했을 순수함, 잊고 지냈을 그 영혼의 깨끗함을 다시 엿보는 장면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내 파시즘의 폭풍 속에서도 미모의 헌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를 지키다』는 역사소설이면서, 한 여성을 둘러싼 왜곡과 침묵을 바로잡으려는 미모의 집요한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결국 “그녀를 지키다”는 다정하면서도 엄숙한 문장이다. 한 남자가 한 여성과 예술을 향해 바치는 일생이자, 헌신인 것이다.


그녀, “아내”를 지키다


읽는 내내, 나는 아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나보다 1년 후배로, 어느 봄날, 내가 학과 소모임 ‘글사랑’을 소개하러 강의실에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뚱뚱한 나와 사루비아 과자처럼 홀쭉한 친구가 붙어 다니던 모습이 웃겼다고 한다. 내 소개 후 아내는 클럽에 가입했고, 나는 한 학년 후배에게 치기 어린 지적 허세를 부렸다. 속아넘어간 아내는 나를 지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해 여름 우리는 지리산 엠티를 갔다. 나도 아내도 함께였다. 그때까지 변변한 연애 경험도 없던 나는 아내를 속으로만 좋아했을 뿐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콘도에서 아내와 다정한 사진을 찍으려고 슬그머니 아내 목 뒤에 팔을 뻗쳤다. 순간 아내는 뒷목에 힘을 팍 주어 버렸다. 사진 속의 나는 무안해진 팔을 엉거주춤하게 올린채 웃고 있고, 아내는 입을 앙 다물고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아내를 찾았더니,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나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곁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았다.


미모와 비올라처럼 말이다.


우리가 연인이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20대 후반의 고시생이던 나를 아내가 구원했다. 불투명한 미래의 남자에게 자신의 남은 생을 건 그 마음이 지금도 나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그 결심은 사랑으로만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처세와 세상살이에 능숙했던 나와는 달리, 세상에 쉽게 타협하지 않고 순수함의 결정체였던 아내다.


그런 아내가 지금 몇 달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나에게 “그녀”는 아내다. 이제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고 기억해야 할 존재다. 아래 문장은 소설 속 대목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기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세상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가르쳐 줬던 가장 소중한 행위를 했다. 나는 일어섰고, 걸었다.”


오늘 나는,
그 문장을 다시 되뇌며
또다시 일어서서 걸어간다.
그녀,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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