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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Nov 01. 2022

케이 고딩은 어떻게 어른이 되나

책: "어른의 시간" / 줄리 리스콧-헤임스


아빠가 K-고딩의 인생을 알아?


곧 고3이 되는 딸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으응?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어른이 되는 게 쉽지 않겠지.

나에게도 고등학교는 눈뜨자마자 달려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권태로운 곳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정글이었다. 교사의 폭력도 수시로 행사되었으며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학교만 다니면서,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입시를 끝내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대다수가 학원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우리 딸은 성적이 뛰어난 아이도 아니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케이 고딩으로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꼬박꼬박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과는 역시나 학원 라이딩이다. 크.

한편으로는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딸에게 가장 먼저 공유한다. 아빠가 평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 걸기”이고, “딸! 잘 있지?" 하고 안부를 묻는 "손 흔들기" 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지 딸에게 건네줄 만한 잘 정리된 책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던 차였다.


반짝이는 이 책을 발견했다.  


원제는 "Your Turn: How to be an Adult"이고 번역명은 "어른의 시간"이다. 저자 줄리 리스콧-헤임스(Julie Lithcott-Haims)는 미국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상담 과장으로 오랜 기간 일했으며, 그녀 스스로 스탠포드 출신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기도 했다.


태평양 건너 저자의 충고가 어쩌면 이리 나의 딸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지 신기하다. 그만큼 이 책은 고담준론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중간중간 좋은 구절들이 많아 원문을 확인하고자 원서를 펼쳐 보기도 했다.


자, 가장 중요한 질문! 우리는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술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선거철이 되어 내 의사로 한 표를 행사하면?


저자는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라고 한다.


전혀 예상 밖의 사건을 마주하고, 어떻게든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부모님은 깊이 위로해주었지만, 일을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풀어 말하면 부모나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 ('자립'이다) 어른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또 배운다.


기대 수명이 100세를 넘어간다. 그런데 학업은 20대에서 마친다. 박사학위를 받더라도 30대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 데, 내 인생의 5분의 1이나 4분의 1 기간 동안 배운 것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 산다고? 그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추려본다.


1. 자립의 기쁨과 공포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펜딩(fending)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를 돌 볼 수 있을 때(fend for yourself)를 의미한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직업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하며,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약속을 지키며,  의사표현을 명확히 할 줄 알고, 관계에 대한 책임을 궁극적으로 지며, 스스로의 미래를 계획하고 개척하는 것을 말한다.


2.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들이며 완벽하지 않다.

청년기는 어린 시절과는 다른 모험의 시기다. 홀로 일어서는 시간이다. 이제는 '완벽함'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잊어야 한다. 더 넓게 생각하고, 불분명하고 애매한 영역을 더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필요가 있다. 두렵고 부끄러워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없을 때도 숨을 내쉬고 용기를 내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것이다. 인생은 완벽히 계획하기 불가능하다.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 안전지대는 빨리 벗어나야 한다.


"왕좌의 게임"에서 존 스노우와 다보스 경의 대화가 인상 깊다.

존 스노우 : 전 실패했어요 (I failed)
다보스 경 : 좋아, 가서 다시 실패하고 와요 (Good, Now go fail again)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공감한 것도 이 점이다. 미국은 실패에 대하여 매우 관대한 사회였다.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으나 대신 그 실패에서 배운 교훈(lessons learned)이 무엇이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반대로 우리사회는 청년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실패할 염려가 없는 직원만을 채용하려고 한다. 바뀌었으면 하는 채용 문화이다.

 

3. 모든 성공의 비밀은 좋은 인성(Be good)이다.


당신의 성품(character) 혹은 인성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세상을 혼자 사는 사람은 인성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전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좋은 인성을 갖추는 것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도 하겠다. 좋은 인성을 갖추면 상대방이 나를 대하기에도 좋고, 인생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에서도 좋다. 간단하다. 한마디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4. 참된 사람, 참된 영웅이 되려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 (The measure of a person, of a hero, is how well they succeed at being who they are, 어벤저스 엔드게임 중 토르의 엄마인 프리가 여왕의 대사)



추수감사절이나 결혼식, 가족 행사 같이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본 어른들은 꼭 이런 질문을 한다.


"어느 대학에 갔니?"

"어디서 일하니?"

"여자 친구는 있니?"


어쩜 이리 우리나라의 풍경과 같을 까?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대답을 했다면 다행이지만, 얼굴에 "으응?" 하는 표정이 보인다면 좋은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는 해석도 공감백배다. 사실 어릴 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부모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다. 인정 욕구다.

저자는 대학교 상담 과장으로 일하며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공을 선택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요구되는 모습'을 연기하며 사는 학생들도 많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쓰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대형 로펌 변호사로서 명품 정장을 즐겨 입었고, 돈도 잘 벌었다. 하지만 9개월째 토요일 밤, 집 베란다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삶이었다. 부모의 희생과 보살핌도 떠올랐다.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러나 이는 답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로 적어봐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가? 나는 내 인생의 설계자다. 내 마음이 부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5.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MZ세대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도록 배웠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보내는 사회적 신호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하고 갑자기 수많은 '낯선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 처음에는 서로 낯선 사람'이다. 기차선로에 기차가 있다면 우리는 기차를 나아가게 하는 레일 중의 하나이며, 관계가 나머지 레일이다. 레일 두 줄을 세우지 못하면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없다.


뉴요커는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로 유명하고, 그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사회적 유대감과 무시, 단절감을 불러일으킨다.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당연히 쉽지는 않다. 자폐 스펙트럼 환자는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는 것을 힘들어한다.


조만간 밥 한번 먹자.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는 말이자 아무 의미 없는 말인가? 저자는 이런 의미 없는 대화를 그만둘 힘은 우리 안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안한다. "그러지 말고 지금 약속을 잡을까?"하고 먼저 말을 건네보는 것을 말이다.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의 연구가 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무엇인가'에 대한 75년의 기록이다. 많은 응답자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명예, 부, 사회적 성공을 골랐으나, 실제로 75년간 연구한 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빠른 것을 좋아한다. 행복도 빨리 얻고 싶어 한다. 관계는 골치가 아프고 복잡하다.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흥분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평생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해내야 한다. 80대에 가장 건강했던 사람들은 50대에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다.


6. 시련 없는 인생은 없다.


인생에서 슬픈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치 좋은 일은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난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불행을 겪더라도 다시 전진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공유한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가 읽으면 읽을 수록 울림이 있다. 나 역시 이를 다시 한번 나누며 끝맺는다. 나의 딸, 케이 고딩에게 이 글을 제일 먼저 공유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평온하게 받아들일 은혜를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꿀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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