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이병헌, 최시원, 박진영, 싸이, 비, 권상우, 김희선
이들의 공통점은?
성룡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에 한 줄 추천사를 쓴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이름이다. 명단 대부분이 장만옥, 오우삼, 유덕화 같은 중국 배우들이다. 그만큼 성룡의 한국 연예계와의 깊은 교류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한국과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우리말도 한다. 유재석의 해피 투게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단어 수준이지만 곧잘 한다.
'새해 결심을 무엇으로 할까' 싶어 동네 도서관에 갔다. 탐색 중 이 책은 우연히 내 손에 잡혔는데,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고 몇 년 되었지만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읽었다.
성룡의 영화를 한번쯤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취권, 용형호제, 차이니즈 조디악, 성룡의 미라클, 폴리스 스토리, 러시 아워, 턱시도, 성룡의 CIA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소룡이 용쟁호투에서 "아뵤~"를 보여줬다면, 다음 주자인 성룡은 술이 든 호리병을 들고 나와 "취권"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이후 다작을 선보이면서 꽤 오랜 기간 즐거움을 줬다. 그의 영화는 낯 뜨거운 장면도 없고 가족들이 웃으며 편안하게 관람하기에 좋다.
성룡의 트레이드 마크하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다. 성룡은 CG라는 건 있지도 않은 시절, 대역도 없이 고난도의 액션을 직접 펼쳐 보였다. 현역 액션 연기자로는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도 유명하지만, 그에게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이 있다. 대역, 스턴트 장비, CG 등의 보완재가 늘 따라다닌다. 반면에 성룡은 혼자서 덤볐다. 성룡의 무모해 보이는 특유의 도전정신과 열정올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성룡은 세계적인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나는데, 스필버그도 성룡의 액션 연기가 궁금했다 보다.
"당신은 그 위험한 액션들을 어떻게 찍었나요?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라든가 계곡을 뛰어서 건너는 장면이라든가..."
성룡은 대답한다.
"오, 아주 간단해요. Rolling, action, jump, cut, hospital!"
농담과도 같은 대답이지만, 사실 그가 액션연기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성룡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도장을 찍은 대스타지만, 그냥 "따거"로 불린다. 중국어로 따거는 "큰 형님"을 뜻한다. 따거의 한자말이 궁금해서 네이버에서 쳐봤다. 중식당 리스트가 쭈욱 뜬다. 취권에서 보여준 그의 원조 먹방연기를 보면 틀린 것도 아니다.
늘 웃음기가 많은 그의 얼굴과 영화 마지막의 NG 시리즈를 보면 인간 성룡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그의 속살에 대하여는 많은 이들이 모른다. 일단 책에서 그는 솔직하다. 제대로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놀랍게도 글도 모른다. 글을 몰라서 신용카드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신용카드 쓸 때 사인만 하면 그만이지만, 초기에는 써야 하는 칸이 많았는데 채울 수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싸인도 주저한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기를 바라는데, 글을 잘 모르니 써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거는 쇼핑광에 도박광이며, 여자를 밝혔다는 점도 고백한다. 첨밀밀 노래로 유명한 등려군과의 연애 그리고 그녀의 이른 죽음에 대하여도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따거는 무술인답게 여성에 대한 살뜰한 배려가 몸에 익었다. 촬영장에서도 늘 여성을 살피고, 영화 개봉에 따른 언론 인터뷰에도 자기에게만 질문하지 말고, 다른 여배우들에게도 물어봐달라고 한다. 음지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에게는 큰 형님으로서 밥을 잘 챙겨 먹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을 방문한 식사자리에서 성룡은 "많이 먹어, 많이 먹어", "남기지 마, 남기지 마"하면서 꼭 두 번 말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따거는 한때 자산이 1조 7천억을 넘었고, 절반을 사회에 환원한 적이 있다. 이렇게까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제2의 이소룡이 되기 위해 열중하고 따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룡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이소룡은 발차기를 할 때 다리를 높이 들어서 차지만 나는 다리를 낮게 드는 편이에요. 또 이소룡은 싸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특징이죠. 제가 싸우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건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려는 거죠. 관객들은 이소룡을 초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단점도 많고 불가능한 것도 많은 사람 말이에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협이나 영웅은 더더욱 아니죠." (pp.283-284)
여기서 탄생한 영화가 "취권"이다. 영화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이소룡의 성적까지 뛰어넘었다. 결국 나만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 아니었을까. 따거의 이전 별명은 '흥행부도수표'였다. 결국 그의 성공은 여러 번 혹독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룬 것이다.
마지막으로,
따거의 표정은 늘 밝고 웃음이 많다.
그래서 정했다. 바로 이점을 새해에는 닮으려 노력해 봐야겠다.
쉬운 새해 결심이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같아 내심 만족 중이었다.
아내는 생각이 다른가 보다.
일말의 고민없이 쿵푸가 들어온다. "그거 어려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