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가 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원제 Where the crawdads sing이다. 저자는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 Crawdad는 crayfish와 동의어다.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큰 크기의 가재다. 미국 남부에서는 흔히 나는 먹거리다. 남부인들은 커다란 들통에 저 가재를 가득 채우고 찜 쪄먹는 걸 좋아한다. 저자는 조지아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조지아에서 공부한 나로서는 그녀가 소설에서 소개하는 풍경들이 친숙하다.
조지아 동쪽 끝으로 가면 서배너 해안이 나온다. 위로 더 올라가면 노스 캐롤라이나 주가 나오는데, 이 지점이 소설의 무대이다. 영어로는 marsh라고 한다. 이 습지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 카야를 마을에서는 습지녀(marsh girl)라고 수군댄다. 이 습지에는 팔메토라는 키 큰 나무가 광활한 석호 곳곳에 서 있고 스패니시 모스가 치렁치렁 나무에 걸쳐 자라고 있다. 간혹 외롭게 서있는 새 블루 헤런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습지를 체험한 적이 있다. 보트를 타고 다니며 축축한 바람을 얼굴에 맞고 망루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그러니 책과 영화의 묘사 하나하나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제목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엄마가 해준 말이라고 한다. 용기를 내 야생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진짜 자연을 만나게 되는데 고요하고 적막한 그곳에서는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저자에게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원작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최장기 올라와있는 기록을 보유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가 몇 군데에서만 반짝 개봉하고 바로 내려와 버렸다. 원작이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아는 이들에게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궁금했다. 덕분에 부티크 개봉관에서 편당 2만 원이나 주고 관람했다.
우리는 카야를 따라가며 각자의 마음속 한구석에 감추어진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꺼내보게 된다. 카야는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로부터 버려진다. 막내인 카야 주변의 형제도 다 도망가고, 끝내는 같이 살던 아빠마저 떠나 버린다. 철저히 버려진 그 아이가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위태롭게 맞닥뜨린다. 돈 한 푼 없는 어린 소녀는 새벽에 홍합을 따서 판 푼돈으로 살아간다. 그 돈으로 남부 특유의 그리츠(옥수수 가루로 만들어 먹는 죽 같은 것이다.) 를 구해 끼니를 때운다.
영화의 주 테마는 그녀를 사랑했거나 사랑하는 척을 했던 두 남자와의 사랑과 배신이다. 그 안에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 소녀에 대하여 늘 수군대고 멀리하려는 기성의 제도와 사회가 있다. 반대편에는 유일한 친구인 습지와 새들이 카야를 위로해 준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글도 몰라 사회화 과정이 생략된 카야는 무너지기를 거듭한다. 그럼에도 카야는 성숙한 어른이 된다. 영화를 특정 장르화 하기가 어려운 게 카야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법정 스릴러다. 미국에서 법을 공부한 내가 봐도 어떻게 자연과학자가 이렇게 썼을 까 싶을 정도로 법정묘사에 대한 디테일이 뛰어나면서 박진감이 있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이 책의 열렬한 독자로서 제작에 참여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주제곡 "캐롤라이나"를 썼다. 원저자는 일흔이 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녀의 첫 소설이다. 십 년이 넘게 집필을 했다고 한다. 습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풍경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가재가노래하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