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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Dec 29. 2022

중년남의 아듀 2022

어머니에게 책을 한 권 부쳐드리고, 톡을 보냈다.


"공감 가는 책이 있어서 보냈어요. 제목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에요.


어머니는 시큰둥하다.


"백 살까지 살고 싶지 않다. 지금도 하루 사는 게 지루하고 힘들어."


어머니는 요 며칠 우울해 보였다. 누나네 식구와 오랜만에 부산에 여행을 갔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촘촘한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걷는 것도 힘들어 목적지에 가보지도 못하고, 벤치에 앉아 쉬는 일이 많았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을 한 모양이다.


그래, 백 살까지 건강하게 돈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면에서 책의 부제가 의미심장하다.


'어차피 살 거라면'


저자 이근후는 여든을 훌쩍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노학자다. 1935년생으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출신이다. 검색해보니 아직 살아계시다. 의사면 부족할 것이 없는 인생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 고혈압, 허리디스크 등 여러 질환을 앓고 있다. 몇해 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구르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쳐 죽을 고비도 넘겼다. 우리의 부모세대가 그렇듯 지독한 가난과 전쟁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 생활을 하는 바람에 변변한 직장도 없이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유쾌하다!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이지만,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과 작별하기는 확률상 어렵다. 나이 먹으면 어쩔 수 없이 아플 수밖에 없다. 불편한 몸으로 유쾌함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 같지 않은 몸 탓에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고, 할 수 있다면 천천히 아프면 좋을 것이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근후 교수는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바로 실천해 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수많은 욕구를 내려놓을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주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다움을 잃어버리면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식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을 간곡히 권한다.


2022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일 년이 스스로 장하고 후련한 느낌보다는 후회가 먼저 고개를 든다. 연초에는 다짐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 생각과는 다르게 입밖으로 나왔던 사려 깊지 못한 나의 말들, 부지런하지 못했던 나의 몸에 대한 생각이 뒤엉켜 말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친다.


그래도 나에 대해 완벽한 점이 있다면 바로 내 나이다. 누가봐도 완벽한 중년이다. 중년이 되어 좋은 것은, 이제는 이교수의 충고를 공감할 수 있고, 또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만물이 소멸하는 겨울이다. 중년남의 세포 또한 생성보다는 소멸에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요즘 중학생 아들 녀석의 허벅지가 유난히 굵어 보였다. 설마 하면서 줄자를 대어보았다. 아들이 나보다 최소 3센티는 더 굵었다. 연초에는 봐줄만했던 흰머리도 이제는 감당이 안된다. 그나마 최근 유행하는 새치샴푸로 가릴 수 있어 다행이다. 작년만 해도 안에 뭘 입어도 겉에 두툼한 패딩만 걸치면 춥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의 강추위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아래위 내복을 장착하지 않으면 출근할 수 없다. 누가 그랬다. "마약 보다 끊기 힘든 게 내복이다." 격하게 공감한다. 모든 것이 예전같지 않다. 자연스레 내려 놓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간다.


이교수의 충고를 나의 2022년에 대입해 본다.


앞만 보고 달리지 않은, 일만 하지는 않은 일 년이었다. 용기 내어 브런치를 시작한 게 7월이었다. 아들과 제주도를 다녀와 "아빠와 아들의 2박 3일"이라는 여행 후기를 올렸는데, 조회수가 1만 회에 육박했다.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타인이 다수 있다는 것은 처음 겪어본 큰 기쁨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든다는 대명제를 겸허히 받아들인 시간이었다. 시간차만 있을 뿐이다. 큰 병치레가 잦았던 나다. 인병휴가를 쓰지 않고 한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나에게 관심도 그다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아내, 가족, 친구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또 받아들인 한 해였다.  

제일 잘한 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 부리지 않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 방에서 도통 나오질 않는 중학생 아들과, 요즘 '메이크업' 기술에 빠져 있는 고등학생 딸을 보면서, 고백컨데 소리 지르고 싶은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나눠 먹으며 함께 웃는 날이 더 많았다.   


적고 보니 괜찮은 일 년이다.


여러분 모두 새해에는 죽도록 일만 하지 않기를,

소중한 사람들과 올해보다는 더 자주 통화하고 만나기를 빈다. 당신이 먼저 연락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아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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