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황현산에 대한 추억
오늘은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가 돌아가신 지 5주년 되는 날이다. 2018년 8월 8일에 운명하셨다. 10여 년 전 선생님의 신문사 칼럼과 단상 등 산문을 엮은 "밤이 선생이다"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열광하며 읽었다. 선생의 사유는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깊었다. 그렇다고 고담준론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고고한 척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은 신안 비금도 시골 섬소년의 기억을 불러내는 등 글감 하나하나가 땅에 서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낯설지 않았다. 문장은 수려했지만 그의 결론은 따끔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후진적인 사고와 세태 그리고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지쳐있던 이들에게 지적 위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선생은 그해 마침내 남성잡지 GQ의 올해의 남자 중 1인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이 선정된 이들이 이정재, 추신수, 여진구, 엑소였다. 빈말이 아니다. 소설 2쇄도 찍기 어려운 작금의 현실에, 2023년 초 기준으로 39쇄를 찍었다.
거슬러 올라가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였다. 황현산 교수님 또한 모교에 교수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선생님은 1학년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각자의 대학생활에 대하여 기대하는 바를 200자 원고지에 써오라는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 원고지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고 싶고 또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미래는 찬란할 것이다"는 것이 요지였다. 한참 더 뭐라고 써놓은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치기 어린 답안이었다.
선생님은 연필로 평을 달아 주셨다. "나 역시 자네의 찬란한 미래를 믿는다. 그런데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라도 배우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억지로 외었던 그 많은 프랑스시와 단어는 온데 간데없고 이런 기억은 생생한 것을 보면 나는 황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선생은 격의가 없었던 것이, "먼저 났으니 선생이라고 부르면 되지, 나를 교수라고 부르지 말어." 하셨다. 선생님은 강의실에 들어오시면 바로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 여성스러운 걸음걸이로 교단을 왔다 갔다 하시다가 이윽고 말씀을 시작했다. 지휘자가 객석과 무대가 고요해지고 정돈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햇살이 비추는 봄날, 오래된 문과대 건물 창가에 앉는다. 창밖은 학생들의 통행로이고 양쪽으로는 잔디밭이다. 학생들이 오고 가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웅웅 거리며 들려온다. 선생님의 예의 그 조용한 말투로 시작되는 시에 대한 강론을 듣고 있으면 선생님의 지적 온기인지 봄햇살 탓인지 모르겠으나 따스함이 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받아 적으면 그 자체로 미문으로 가득 찬 산문이 되는 수업이었다.
선생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를 소개한다.
밤에 작업을 하고, 대낮에 눈을 떠서 사우나에 가면 사우나는 비어 한가한데, 그때 이용객은 '밤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이 이용하는 사우나는 조폭들이 애용했다. 어느 날 선생은 사우나에서 온몸에 용 문신을 한 젊은 조폭의 문신을 보고 매료가 되었다. 그러고는 그의 몸에 손을 대고 "문신이 아름답군요"했다. 이 조폭은 선생의 느닷없는 손길에 처음에 깜짝 놀라다가 허리를 굽히며 "어르신, 멋지지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인사를 건네더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조폭의 문신을 '아름답다'라고 인정할 것인가. 그 인정은 문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정이기 전에 그 문신을 아름답다고 여긴 조폭의 미의식에 대한 인정이며, 그 미의식을 제 몸에 새긴 조폭의 욕망 또한 한 '정상적 욕망'이라는 존재 긍정이다. "전위와 고전", 황현산의 강의노트, 함돈균의 소개글에서
2018년 7월 말 같이 수학했던 이들 그리고 아내(과 1년 후배다)와 고대 안암병원에 선생의 문병을 다녀왔다. 선생님의 새 산문집을 들고 갔었는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었다. 병세가 몇 줄 받을 처지가 못되었다. 당시 말씀을 거의 못하셨다. 이 세상에서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운명하셨다.
오늘 잠시 이 글로 밤의 선생을 추억해본다. 편히 쉬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