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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15. 2023

영화 "오펜하이머"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가 곧 개봉한다.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무기를 개발한 과학자 오펜하이머 이야기다. 그의 핵폭탄은 결국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졌고, 일본은 곧바로 항복했다. 그로 인해 핵무기가 인류에 쓰인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물론 마지막 사례가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은가? 어찌보면 진작에 영화화할 소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만의 색깔이 있다. 그의 영화는 구조적으로 매우 촘촘하다.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놀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점이라고 본다. 오펜하이머에서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치보다 핵무기를 먼저 개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과학자 오펜하이머와 반대로 인류를 파멸로 몰아 넣을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다는 공포를 느끼는 인간 오펜하이머의 고뇌와 갈등"이 촘촘하고 디테일한 구조로 그려질 것이라고 본다.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인셉션"의 스토리 구성을 위한 놀란의 메모

영화음악부터도 다르다. 지금이라도 배트맨의 OST를 들어봐라. 그의 영화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서정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이유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어두움과 비장함이 음악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는 대중성에서도 남다르다. "배트맨 시리즈 3부작, 덩케르크, 인터스텔라, 인셉션, 메멘토, 인썸니아 그리고 프레스티지." 그를 블록버스터를 재정의한 감독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영리한 감독이라고 하겠다. 


책은 그가 만든 지금까지의 장편영화 각각을 기획 단계부터 최종 상영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 냈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한마디로 "집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뭐하나 대충하고 끝내는 것이 없다. 그만큼 세세한 부분들에 대하여 집착한 결과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3편을 꼽아보라면, 나는 인터스텔라, 배트맨 트릴로지, 그리고 프레스티지를 선택하겠다. 그 중 나의 최선호작은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는 황폐해진 지구에서 더이상 살기 어려워진 인류가 새로운 살 곳을 찾아 우주로 나선다는 이야기다. 놀란 감독이 얼마나 과학적인 측면에서 "집착"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상대성 원리, 휘어진 시공간, 현실이라는 구조에 뚫린 구멍들, 중력이 빛을 휘어지게 만드는 방법, 블랙홀은 어떻게 생겼을 지 등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부분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그것도 크게 어렵지 않게 관객에게 전달하면서 말이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놀라웠던 부분은, 인터스텔라가 그 과학 안에 ‘내재된 서글픔’을 기초로 인간의 트라우마와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놀란이 파고든 저 물리학의 원리에는 항상 '이별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은 기차를 타고 다른 한 명은 플랫폼에 있거나, 한 명은 우주선을 타고 다른 한 명은 지구에 남겨져 있다. 기차나 우주선이 빛의 속도에 근접할 만큼 속도를 올릴 때 늘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이것은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 말이다. 배우 매튜 매커니히는 우주 비행사 "쿠퍼"로 등장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 "머피"가 있다. 그는 우주탐사를 떠나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에게는 사실 선택지가 없다. 딸을 지구에 남겨두고 어쩔 수 없이 우주로 떠냐야 하는 아빠의 딜레마와 죄책감이 저 '내재된 서글픔'에 오버랩되어 나온다. 


놀란이 직접 그린 인터스텔라의 태서랙트 스케치다. 후반부에 나오는 우주공간 속의 책장이다. 놀란이 얼마나 꼼꼼한 연출가인지 알 수 있는 그림이다. 

태서랙트는 번역하자면 정팔포체다. 

"가지마 이 바보야." 쿠퍼는 책장에 있는 책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딸과 접촉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책장에 '샬롯의 거미줄'이 꼽혀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동화는 우정, 구원, 연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피 나를 떠나게 놔두지 마" 부모로서 느끼는 회한으로 가득차 쿠퍼는 끝없는 태서랙트를 헤맨다. 놓쳤던 기회들과 말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택하지 않았던 길을 다시 마주치게되는 고통을 겪으면서 말이다. 아빠들이 가진 트라우마다. 이 대목에서 딸을 둔 아빠 들이라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인터스텔라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룬 영화라는 평가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딜런 토머스의 시 “분노하라, 빛이 꺼져가는 것에 분노하라.”라는 싯구가 반복된다. 나는 영화를 볼 때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리송했다. 생각해보니, 아빠의 빛이 꺼져가고 있을 때, 딸의 빛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시간의 섭리일 지도 모른다. 


놀란은 이러한 명제에 반격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과 선후관계를 초월한 그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이 싯구가 영화에서 반복되어 나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은 두껍다. 526페이지다. 중간에 사진과 삽화가 많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읽힌다. 놀란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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