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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Aug 26. 2023

미국의 마을 도서관은 뭐가 다를까?

뉴욕 맨해튼에 가면 명품쇼핑으로 유명한 거리가 있다. 5번가다. 구찌, 루이뷔통, 롤렉스 등 명품샵들이 즐비하다. 아예 5번가를 딴 백화점도 있다. Saks Fifth Ave(5번가 삭스 백화점)다. 그런데 그 금싸라기 땅에 뉴욕공공중앙도서관이 있다. 처음 지나가면 도서관인 줄 모르기 십상이다. 도서관치고는 웅장한 석조건물이다. 볼거리가 많은 뉴욕이기에 관광객들은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지만, 사실 이 도서관은 무료다. 뉴요커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들어가보면 명문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의 학생들도 있지만, 이용자들은 각양각색이다. 공통점이 있다. 노인과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조용히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도서관은 썰렁하지도 않다. 오히려 붐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미국에는 이런 공립 도서관들이 맨해튼부터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미국에서는 5월에 로스쿨을 졸업하면 7월 말에 변호사 시험을 본다. 학교 다닐 때야 로스쿨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되지만, 졸업 후 공부할 곳이 필요했다. (집에서 학교는 1시간을 가야한다.) 스벅에 가서 카공 족이 되어보기도 했는데, 번잡하고 시끄러워 적응이 힘들었다.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마침 집 근처에 거대한 개신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 1층에 카페가 있었다.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곳을 종종 이용했다. 


낮에 가면 연세 지긋하신 백인 노인들이 많이 계셨다. 커피 맛도 좋고, 일하시는 어머니 뻘 여자 분도 친절했다.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동네 주민으로서 밝은 얼굴로 들어갔다. 어차피 만나는 얼굴들이 뻔한데 어르신들은 나를 모른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살던 곳이 미국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 KKK의 본산지였다. 어느 날부터 카페에 앉아 있으면, 옆 할아버지들이 저 가면 쓰고 어젯밤 만난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다. 


"피터, 요즘 우리 교회 카페에 저 동양인 녀석이 허락도 없이 나오기 시작하던데 알지?"

"그래, 톰. 혼 좀 내줘야지. 어느 나무에 매달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카페도 가기 싫어졌다. 

당신도 익숙할 KKK들이 모인 장면

그래서 정착한 곳이 동네의 샤론 공립 도서관이었다. 정식 명칭은 Sharon Forks Public Library. 마을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우리 집에서도 차로 10분 정도 달려가면 있는 1층 짜리 도서관이다. 보유하고 있는 책은 동네 도서관 치고는 많다. 연간 대출건수가 1백만 건을 돌파했다는 정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둘째가 동화책 읽기를 좋아했다. 테이블에 책을 잔뜩 쌓아 놓고 다리를 덜렁거리며 책 읽기에 열중하던 아들이었다. 대출한도도 1인당 20권이었다.

 

내 하루 루틴은 이랬다. 자고 일어나면 차를 가지고 타겟(이마트 같은 곳)에 들른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샌드위치의 두 배쯤 되는 두툼한 녀석을 집어든다. 종류가 많아 고르는 재미가 있다. 계산대 옆 스벅에서는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간다. 차에 타 도서관으로 향한다. 늘 도서관 문 여는 시간에 가니 사서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사서들은 반갑게 웃어주고 물어보는 것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해 준다.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30석 정도의 열람실이 따로 있다.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아점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 무렵 배가 고파지면 바로 옆에 있던 맥도날드로 향한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기도 했다. 

내부.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사진을 안 남겼다. 


하루종일 있어보니 도서관은 마을 사람들의 지적 쉼터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많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조용히 앉아 종이 신문을 뒤적이기도 한다. 나처럼 시험공부를 해야 해서 아침부터 문 닫을 때까지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다. 책을 보아하니 어떤 여학생은 의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 같았고, 회계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도서관은 늘 활기차고 북적인다. 아이들을 위한 책들도 많지만, 신간 전문서적도 많고,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도 늘 업데이트되어 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동네 도서관은 "연결"을 시켜주는 곳이었다. 단순히 책과 주민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을 연결시켜 주는 곳이었다. 도서관에는 늘 새로운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아래 사진이 예다. Swashbuckling은 칼싸움한다는 뜻인데,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어드벤처 물을 읽는 활동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뜨개질,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목공, 케이크 만들기 등 취미활동도 도서관에서 열린다. 사서와 봉사자들이 기증도서를 파는 북 세일 이벤트도 열린다. 열심히 책 읽기에 참여한 아이에게는 소소한 보상도 준다. 단계별로 배지를 모으게 하고 가장 많이 모은 아이에게는 상을 준다. 도서관 앞 주차장이 꽤 넓은 데, 주말에는 파머스 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동네의 농산물 업자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 잼 등을 가져와서 주민들과 직거래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개최되다 보니 친해지는 주민들이 생기고 담소를 나누는 기회가 된다. 


최근에 챗 GPT가 등장하면서 책 읽기는 이제 구시대의 유산이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은 다들 웹툰 그리고 유튜브나 틱톡의 숏 비디오를 소비하는 것이 대세다. 지하철을 타봐도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다수다. 차분하게 글자로 가득한 전자책을 들여다보는 이나, 종이책을 뒤적이는 이들은 희귀종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챗봇은 사람이 말하는 것만 같은 자연스러운 대답을 하지만,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진위여부에 대하여는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려면 비판적 사고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 과학잡지에서 검증을 강조하는 것도, 논문을 쓸 때 각주를 꼬박꼬박 다는 것도, 변호사들이 의견서를 쓸 때 법 조문을 하나하나 챙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견이 있다면 그것의 근거를 정확히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읽기의 중요성이 인류가 생존해 있는 동안 사라지지 않을 이유다. 


미국 마을 도서관들은 주민들이 도서관에 자발적으로 오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문해력을 키워주고 있다. 챗GPT를 만들어 낸 곳도 미국이지만, 제대로 보완할 나라도 미국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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