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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05. 2022

장효조, 구조적 폭력, 미국 총기사고의 삼각관계

초등학생 때다. 등교하려면 언덕길을 올라야 하고 문방구를 두 군데 지나야 했다. 그날따라 등굣길에 "뽑기"가 하고 싶었다. 커다란 판때기에 접어 놓은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중에 하나를 뽑는 거다. 그 안에는 야구선수의 스티커가 있었다. 누가 들어있는지 모르고 뽑는 게 묘미였다. 한판에 50원이었나? 당시 흰 란닝구(런닝셔츠라고 하면 안된다.)를 걸친 채 어느 삼촌이 땀을 뚝뚝 흘리며 뽑아내던 수타 짜장면이 35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수들을 다 모으면 어마어마한 부상을 주었다. 현미경 같은 집에 없는 물건 말이다. 당시 프로야구에 장효조가 있었다. 타격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타자였다.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다."라는 말이 심판 사이에 돌았다. 통산 타율 0.331이라는 대기록의 보유자다. 역대 1위로 알고 있다. 3050타수에 1009안타를 쳐냈다. 장효조는 그야말로 박찬호, 류현진 급이었다. 판때기 한판을 다 뽑아도 걸릴까 말까 한 로또였던 거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의 선수시절


그날 아침 내 고사리 손에는 덜컥 장효조가 뽑혔다. 나의 반백년 인생을 돌이켜봐도 이 정도 행운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 소년의 가슴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장효조를 손에 쥐고 한달음에 등교하는데, 교문 앞 선도부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세우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멀리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뽑은 게 장효조인 것 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내 손을 펴보라고 하더니 그의 눈빛이 순간 번득였다. 


"뽑기 하면 안 되는 거 모르나?"

하는 헛소리를 했던 것도 같고 


"스티커를 가지고 등교하면 안돼."

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 선배는 나에게서 빼앗은 장효조를 어떻게 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날 나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상처받은 무구한 동심은 한참을 등굣길마다 괴로워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선도부원의 선도 행위는 "구조적 폭력"이었다. 그에게는 교사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별다른 지침 없이 주어졌으며 힘의 행사에 대한 스스로의 경계도 없었다. 자신이 가해자였다는 생각을 지금도 안하고 있을 것이다. 나로서도 "네가 뭔데 빼앗어?"라고 대든다는 것은 당시로선 아득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이런 일은 없다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참상을 접하면 우리들은 분노한다. 한편 슬쩍 뒤돌아 내가 아닌 것에, 내 가족이 희생당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우리는 그래서 구조적인 변화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며 완성하려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점에 더 쉽게 지치며 어느 순간 잊고 지낸다. 그러다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나면 (바뀐 게 없으니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고다) 분노한다.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총기규제의 필요성이 여기저기 시끄럽게 나오다가 다시 잠잠해지고 있다. 오히려 총이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핑계로 여론몰이가 되고 있다. 이 와중에 시카고에서는 7월4일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총을 난사한 사고가 또 일어났다. 


미국에서 로펌에 다니는 로스쿨 동문이 최근 총을 사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샵을 방문해서 총기들을 직접 만져보았다고 했다. 총을 사고 싶지는 않지만 그만큼 사고의 위험이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총기 소유 권리는 금과옥조가 아니다. 정치 사회적 합의만 있으면 바꿀 수 있다. 그런데도 총기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내가 어떤 사회구조 속에 있는지 성찰하지 않으면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참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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