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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27. 2023

뭄바이: 싫다가도 정감이 가는 이상야릇한 도시

덥고 지치는 요즘이다. 이럴 때는 이열치열. 더 더운 나라, 인도의 뭄바이 출장 이야기를 해본다.


카톡!

‘카레국 당첨! 잘 다녀오세요.ㅋㅋㅋ‘

부사수다.


'아오. 지가 안 간다고.'

그 이후로도 부사수가 끊임없이 보내오는 사진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부하직원의 상사 괴롭힘도 성립하나?)


이런 사진이다. 한편으론 저런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이 경이롭다.

뭄바이는 테헤란로 못지않게 고층 빌딩이 즐비한 금융 중심지다. 야간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상하이나 홍콩 못지않게 화려하다. 또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 산업의 핵심지다. 그런데 자꾸 후배의 사진을 보다 보니 선입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녀온 경험이 있는 임원이 한마디 거든다. “호텔 안은 괜찮아. 하지만 밖에만 나가면 …어휴. 카오스야."


인도는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다. 또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경험자들과 가능한 오랫동안 두루두루 체험하고 싶다는 여행자들. 도착했을 때 나는 사실 전자였다. 시내는 불결하고,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밖을 나와 좀 걸을라치면 거지들이 쉼 없이 달라붙는다. 냄새와 매연도 도시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스위스에서 온 패트릭은 첫날 내 옆에 슬쩍 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한마디 한다.

“God, Steve, this place sucks.”  스위스의 명품 ‘오데마 피게’ 시계를 자랑하며 고급 수트에 깔끔한 외모로는 일등인 친구니 그럴만도 하다.


‘뭐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왜냐하면 호텔이 근사했기 때문이었다. 회의가 열리는 숙소는 ”타지 호텔“이었다. 특급 호텔이다. 로비에는 안젤리나 졸리 등 셀럽들의 방문 사진이 걸려있다. 인도의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내외관도 수준급이다.

‘그래, 수영장에서 운동이나 열심히 하지 뭐.’


첫날 일정이 끝나고 야외 수영장 선베드에 느긋하게 누웠다. 핸드폰으로 셀카를 몇장 찍고 별 생각 없이 뭄바이 타지 호텔을 검색해 보았다. 허걱. ‘테러’라는 단어가 나온다. 뭐지? 2008년에 호텔에 테러가 일어났다. 무장소총 사격이 오고가고 수류탄이 터져서 거의 200명 가까이 죽었단다. 아이고. 갑자기 호텔에도 정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2008년 테러 공격 당시의 뭄바이 타지 호텔

3일 차였다. 안에만 있었다. 근질근질한 차였다. 회의 중 '판메이'라는 이름의 현지 중앙은행 직원과 친해졌다. 판메이가 오더니 솔깃한 제안을 한다.


“끝나고 저녁에 맥주 한잔 하러 가지 않을래?

“콜!”


서울 을지로 뒷골목 노포에서 골뱅이 안주에 병맥주를 먹어보았는지? 회사 뒷골목이라서 나는 종종 가는 편이다. 그런 나를 판메이는 뭄바이의 '을지로 골뱅이집'에 데리고 갔다.


문을 열었다. 안에서 자욱한 담배연기가 후욱 나를 향해 뿜어나온다. 살짝 긴장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넥타이 부대들이 수십 명 앉아 있었다. 몇몇이 생김새가 다른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술을 마신다. 자리를 잡았다. 둘러보니 인도 킹피셔(Kingfisher) 맥주를 잔뜩 쌓아놓고, 땅콩을 안주 삼아 들이붓고 있었다. 낮에는 누가 입에 재갈이라도 물렸나, 왜들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던지. 인도 샐러리맨들의 ‘저녁이 있는 삶’이 이거였구먼. 우리 둘도 병맥을 테이블에 쌓아놓을 정도로 먹은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이상야릇하게 정감이 가면서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트립 투 그리스(Trip to Greece)"란 영화가 있다. 메가폰은 마이클 윈터바텀이 잡고, 영국의 두 코미디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나온다. 영화는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리스를 돌아다니면서 먹고 마시며 쉬지 않고 떠드는 것."


그렇다. 식도락(食道樂)이란 말이 있다. 리얼리티 여행의 진수는 내 미각을 깨워주는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특별한 식당을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비싸고 화려한 식당은 아웃이다. 그런 곳이야 당연히 맛있을 테니까. 판메이는 나에게 가보고 싶은 식당이 있냐고 물었다.


뭄바이 사람들이 가는 카레식당이 있을까? 호텔에서 먹는 카레 말고.


친구가 되어버린 판메이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둘이서 택시를 잡아탔다. 여기저기 막히는 길을 헤집고 몇십 분을 갔을까. 'Soam'이라는 식당 앞에 택시가 섰다. 허름한 외관이었으나 안은 깔끔했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인도 음식은 치킨 마살라나 시금치 카레에 빈대떡처럼 생긴 난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넓디 넓은 카레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 식당에서 알았다. 메뉴판 전체가 빼곡히 카레들이었다. 판메이는 이것저것 많이도 맛보게 해 주었다. 하나같이 처음 먹어보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입이 호강한다. 뭄바이라는 도시의 여행지로서의 가치를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뭄바이 같은 도시에서는 첫인상부터 호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사는 냄새가 조금씩 익숙해진다. 내 어린 시절 역시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린 시절 가끔씩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거지가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밥과 반찬을 퍼내서 그 거지가 들고 다니던 빈그릇에 담아주었다. 위생 관념이 철저한 시절도 아니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어렵지 않게 볼 때 였으니까. 지금에 비하면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해질때까지 흙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오징어 게임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가족들하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냐고? 솔직히 세모이긴 한데, 그래도 엑스가 아닌 게 어디야! 물론 Soam은 다시 가야겠다. 그때 먹어본 메뉴를 포함해 온갖 종류를 맛봐야한다. 그 사이 늦둥이가 태어난 판메이에게 축하인사도 건네야 겠지.


*글에서 인도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새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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