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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Oct 03. 2020

서울에 사는 것은 스펙이었다

<여는 글 > 제 1화 / 목표는 오직 'in 서울'

분명, 밤늦도록 해가 지지 않았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을 그리면, 곧 함박눈이 쏟아질 것 같은 침침한 날에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오돌오돌 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서울을 방문한 여름날, 지하철 환승역에서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얼굴에 묻은 땟국물이 씻겨지도록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꼭 서울에서 살겠노라고.




꿈 많은 소녀는 괴로웠다. 버스로 서울에서 4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 사는 소녀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꿈을 위해 배워보고 싶은 게 있어도, 다양성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작은 육기관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의 작 꿈들이 매번 쉽게 좌절되었다. 


내가 꿈을 재잘거릴 때마다,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날들이 조금 지나면 늘 그랬듯이 ,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중에 서울로 대학 가서, 그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국영수 이외의 다른 것을 배우기가 마땅치 않는 지방에서, 조금 특별한 꿈을 갖는  서울에 사는 친인척이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마저 아는 지인이 없다면, 서울로 올라가는 차비와 가서 묵을 숙소, 먹을 것들까지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보호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철없는 소녀였어도 정신이 번쩍 었다. 부수적으로 드는 비용과 인력이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다. 그러니 특별한 꿈을 꾸기보다, 일단은 국영수 공부를 하며 그저 대학입시에 매진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 합리적이었다.



내가 살았던 지방에서는 내 꿈 유난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러한 것처럼,  '인 서울'을 외치며, 대학을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몰아서 해보리라 생각했다.




렇게 미뤄둔 꿈을 생각하면서 때때로 설움을 삼켰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면서 도저히 그 설움이 삼켜지지 않는 날을 더 많이 보냈다. 그리고  설움을 가셔보고 싶어 학창 시절의 끝자락에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는 고3 1학기, 기말고사 하루 전 날이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가냐 마냐'의 문제에 부딪혔다. 이번에도 모두 합심하여, 포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몇 달을 준비한  대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엄마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



그날 새벽, 첫 차를 타기 위해 4시에 일어났다. 통 때면 한창 잘 시간이었지만, 첫 차를 놓치게 될까 선잠을 잤더니 그날은 일어나는 게 참 쉬웠다. 그렇게 새벽 4시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대회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택시보다 편하다는 서울에 살아 봤던 큰 이모네 조언에 따라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지하철이 처음이라 승차권을 구입하고 승차권을 투입하는 것도 여러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환승역에서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경험하며 대회를 임하기 전부터 설움이 터졌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떠밀리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지하철 자동문 때문에, 두르다 환승을 잘못했다.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엄마 손을 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도대체 왜 그래!!" 하면서 목이 쉬도록 울어버렸다.



나는 그때 우리의 온도를 기억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오돌오돌 떨린다. 꽤나 서럽고 행여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오싹했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잡아탔다.  내 순번이 오기 전에 도착해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전에 터진 울음보 때문에 숨이 찼다. 리고 곧, 엄마에게 드는 죄책감 밀려들어 복잡한 마음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대회보다 눈에 들어왔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까만색 세단 차에서 황금빛 머리백인 남자와 함께 내렸던 동갑내기 여자아이. 내 얼굴은 이미 햇볕에 그을려 땟국물이 흐르는데, 그 친구는 신선한 샴푸 냄새가 났고, 깔끔했다. 그 친구는  백인 대회 바로 직전까지 연습을 했다. 마치 연습의 연장인 것처럼 그 대회를 치렀다.



대회가 끝나고, 수상자를 호명했는데, 아무리 애타게 들어봐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허탈하게 대회가 끝났다. 다시 내려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겨우 남은 비싼 좌석을 두 개나 끊고 기차올랐다.

값비싼 영수증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렇게 처음 KTX를 타고서 자존심도 없이 울었다.




 며칠 뒤, 나에게도 수상 소식이 전해왔다. 그날 너무 정신없었는지,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상이 왔다. 그 친구와 같은 상이 었다. 학교 문 앞에 래카드가 걸렸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수를 줬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백인과 함께 내렸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도 곧 기말고사였겠지? 그 구는 대회가 끝나고 편하게 엄마 차를 탔겠지. 그리고 밥을 먹고 기말고사준비했겠지, 아마 대회에 오기 전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었겠지. 잠도 평소대로 잘 수 있었겠지. 대회 시작 , 3시간 정도 여유를 줬겠지. 우리가 결국 같은 상을 받았지만, 전혀 다른 '


나는 학교를 오를 때마다, 그 래카드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반드시 서울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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