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잠을 잘 자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걸까?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빠..
흔히들.. ‘아빠’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가장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아빠는 그렇지 않으셨다.
우리 아빠는 막노동을 하셨기 때문에 매일 출퇴근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비가 오면 일이 없고, 공구리치면 일이 없고..
어릴 때는 공구리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아마 콘크리트나 시멘트 같은 걸 바닥에 부어 놓으면 그게 마를 때까지 일이 없으셨나 보다.
또 한 곳에서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일을 찾을 때까지 다시 일이 없으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는 일을 잘 안 나가셨다.
1년 평균 총 일을 하신 날짜는 3-4달이나 될까?
대신 우리 엄마는 매일 장사를 나가셨다.
쉬는 날은 딱 비가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 뿐이었다.
엄마는 노점에서 장사를 하셨기에 비나 눈을 피할 곳이 없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장사를 못 나가시는 거였다.
어릴 때 나는 비나 눈이 오기만 기다렸다.
엄마랑 온전히 같이 있고 싶어서
하지만 장사를 안 가시는 날도 여전히 엄마는 나랑 놀아주시지 못했다.
그런 날은 밀린 집안일을 하시고 밀린 잠을 주무셨다.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엄마가 간식을 내어주는 모습이 나에겐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허리도 아프다고 하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집에서 쉬실 변명거리가 생긴 거였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집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아빠가 아빠 친구분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서 담배를 피우시면서 막걸리에 김치까지 꺼내놓고 고스톱을 치고 계셨다. 허리가 아프신 분이 그게 가능한 일인지…
그래서 그 당시엔 집에 가기가 참 싫었다. 일부러 집 근처를 뱅뱅 돌기도 하고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우리 집으로 오기도 했다.
아빠는 학교 잘 다녀왔냐는 안부 인사도 없이 열심히 고스톱을 치시다가 때때로 술 심부름도 시키셨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가도 자랑하고 싶은 엄마나 아빠는 나에게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혼내신 것도 아니다.
아빠는 노시느라 , 그리고 엄마는 삶을 살아내시느라 내 성적에 관심을 가지실 시간이 없었다.
아빠를 기억하면 또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낮잠’이다.
티비를 켜 놓으신 채로 낮잠을 잘 주무셨다.
노년에 기력이 떨어지셔서 그런 것도 아니고 40대 50대 때에도 집에서 빈둥거리시다가 무료하시면 낮잠을 주무시는 거였다.
나에게 낮잠은 … 오후의 남은 일과를 해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나 평화로운 휴식이 아니라 게으름의 상징이다.
낮잠을 자면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아무리 피곤해도 낮에는 침대로 내 몸을 밀어 넣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파에서도 누워있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강박 같은 게 생겼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이 자는 것도 싫었다.
남편이 자는 모습에서 게으르고 무능한 아빠가 겹쳐 보여서 신혼 초에는 남편이 낮잠을 잔다고 하면 못 자게 방해하거나 밖으로 유인하거나 아님 다른 일을 시켰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나 조차도 몰랐으니 남편도 당연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싸우기도 했다.
검색해 보니 하루에 30분 정도의 낮잠은 기억력 향상, 스트레스 감소 및 감정 조절, 심장 건강 개선, 피로 회복 및 에너지 충전 등 긍정적 효과가 많단다.
하지만 나에게 낮잠은 게으른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쯤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