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미워했어요

무능한 악당 아빠

by 창가의 토토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다 말아먹고 이불보따리랑 수저만 들고 상경했죠.

전 너무 어려서 사실 잘 기억이 없어요.

정말 이불보따리를 가져왔는지 아님 그마저도 없었는지 몰라요.

그냥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런 줄 알아요.


우리가 시골에서 살았을 때는 제법 땅이 있어서 우리 논이랑 밭에 땅을 빌려 농사짓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던데, 아빠는 부잣집에 태어나셔서 돈에 대한 갈급함이 없으셨나요?

돈이 궁한 적이 없어서 돈 무서운 줄 모르셨나요?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한량 팔자였나요?

아니면 가난한 집안의 아홉 남매 중 둘째 딸이었던 생활력이 너무 강한 엄마 탓도 있을까요?

정말 쪽박을 찰 수준까지 갔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서울행을 결정하신 거겠죠?






제 기억에 아빠는 농사를 짓지 않으셨어요.

아빠가 시골에서 하신 일이라곤 술과 노름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울산에 큰 프로젝트가 있다며 친구 따라 울산으로도 가셨다죠?

2년인가 울산에 계셨다는데 돈봉투 한 번 갖다 주신 적이 없으셨다죠?

그 돈은 다 어디 갔을까요?

돈 떨어지고 일 떨어지니 다시 시골로 돌아오셨죠?

그 이후엔 친구분이 서울에서 원단 장사를 시작하셨는데 수입이 꽤 괜찮았고 아빠에게 동업을 제안하셨다죠?

논 팔고 밭 팔고 돈뭉치 들고 서울로 가셨죠.

그때 동대문에서 원단 장사해서 망하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아빠는 그 어려운 걸 하셨어요.

사실 장사가 망한 건지 아님 동업자에게 쫓겨난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빠는 한 군데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실 분이 아니니 동업 파트너로서는 최악이니까요.

어쩌면 그 친구분은 아빠의 그런 성향을 이미 아셨지만, 돈이 필요했으니 아빠에게 손을 내미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엄마가 생활 전선으로 뛰어나가실 수밖에 없었죠.

엄마보다 먼저 서울에서 장사를 시작하신 엄마 친구분의 소개로 엄마도 서울로 장사를 다니셨죠.

엄마가 경제적인 도움을 주셨어도 열등감이 팽배한 아빠는 고맙단 말한마디 하지 않으셨겠죠.

오히려 그 열등감으로 인해서 엄마를 더 괴롭히지나 않았나 모르겠네요.

제 기억 속에서 엄마랑 아빠는 간간히 부부싸움을 하셨는데 사실 그건 싸움이라기보단 아빠의 일방적인 화풀이와 난동이었어요.

엄마는 당하고만 계셨죠.



우리 5남매가 아직도 심심치 않게 얘기하는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가 있지요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팥칼국수를 끓이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떠한 기계의 도움 없이 순전히 사람의 노동으로 한여름의 더위 앞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팥을 삶고 직접 반죽한 면으로 끓인 그것은 참으로 귀한 음식이 아닐 수 없죠.

그런데 아빠는 뭐가 뒤틀렸는지 그 상을 뒤집어엎으셨다죠?

뭐가 그렇게 화가 나셨나요?

그 시절에 엄마는 아빠대신 농사를 지으시고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5남매를 키우신 분인데.

왜 아빠에게 엄마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였나요?

엄마에게 막 대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에게 악당의 이미지가 조금씩 아빠에게 쌓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시절 나에게 엄마는 온 세상이고 온 우주였는데 나의 우주를 아프게 하고 짓밟는 아빠는 그저 악당일 뿐이었죠.

아빠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노름한답시고 또는 어디서 술을 드시느라 저녁식사 시간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아빠의 밥을 한고봉 만들어 아랫목 가장 따뜻한 곳에 이불을 덮어 놓으시던 엄마의 모습은 퍽이나 인생적이었어요.

추운 겨울 5남매는 서로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우리보다 아빠의 밥그릇이 명당을 차지하곤 했으니까요.



엄마는 아빠에게 왜 꼼짝 못 하고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악당으로부터 엄마를 보호하고 싶단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가 아빠를 미워했던 이유 중 하나예요.

아빠는 착한 우리 엄마를 괴롭힌 악당이었어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