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미워했어요. 세 번째

외도

by 창가의 토토

사실은 이것이 아빠와 나 사이의 가장 두껍고 큰 벽을 만들었을 거예요.


왜 그러셨나요?

아빠의 삶은 너무 지루하셨나요?

요즘 말로 도파민이라도 필요하셨나요?

엄마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는데, 자기 몸보다 무거운 다라이에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셨는데 가장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뭔지도 모르시는 아빠는 항상 더 새롭고 강한 자극이 필요했나요?

젓갈을 파시느라 엄마에게 배어있던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가 아빠에겐 아프지 않던가요? 미안함 마음이 안 드신던가요?

본인이 능력이 없으셔서 돈은 못 버실 수 있어요.

그건 접어주더라도 남편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셨어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고 손길을 주실 수 있나요?

안 그래도 버거운 삶을 살고 계시는 엄마에게 어떻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올리시고 상처를 주실 수 있으셨나요?


그때의 아빠를 떠올리면 차마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아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싶지 않은 짐승 같은 존재였어요.

엄마에게 바람피운 걸 들키셔서 두 분이 엄청 크게 싸우시는 걸 목격했지요.

두 분이 안방에서 싸우시는 소리가 들렸어요.

작은방에서 숨죽이며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언니들과 저는 마침내 엄마 아빠가 싸우고 계신 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둔탁한 소리들이 불규칙하게 들리고 엄마 아빠의 고성이 울려 퍼지는 걸로 봐서 폭력이 행사되고 있다는 것이 추측됐거든요.

우리 셋이 뛰어가보니 엄마는 아빠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고 계셨어요.

엄마가 이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모습과 목소리로 아빠에게 울부짖듯 외치던 모습은 어린 저에게도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들더군요.

우리 셋이 아빠를 뜯어말렸어요.

글쎄요. 그때 아빠가 우리 셋에 힘에 의해 말려진 건지 아님 자식들이 눈앞에 나타나니 조금이라도 이성이 깨어지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싸움은 그렇게 일단락이 지어졌어요.

자식들 앞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요.

저 같으면...... 상상을 해보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게 분명 제 탓이 아닐진대.. 왜 저는 먼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까요?

자식들 앞에서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미안함이랄까..

미안함 뒤에 창피함도 올라올 것 같아요.

부모가 자식 앞에서 그렇게 격한 몸싸움을, 더군다나 그런 이유로 보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이후로 아빠에게 철저하게 벽을 쌓았던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아빠는 아빠가 아니었으니까요.

더럽고 추하고 나의 우주인 엄마를 잔인하게 난도질한 악당 중의 악당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 사건은 제가 고3 때 일어났어요.

한참 이성과 연애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이기도 하죠.

저는 다행히 착한 남편과 결혼 생활을 잘 이어오고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과의 잠자리는 쉽지 않아요.

남편은 스킨십을 좋아해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잠자리를 좋아해요.

그런데 저는요.. 그것이 어쩐지 부정적인 감정으로 먼저 다가와요.

(물론 이 일에 남편의 원인제공도 있었어요.

그건 나중에 혹시 또 다룰 일이 있다면 그때 좀 더 자세히 쓸게요.)

남편과의 잠자리는 부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저는 그것이 주는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자꾸 거부하고 싶어요.

한 번은 남편이 묻더라고요.

당신은 그걸 왜 부정적이고 더럽다고 생각하느냐고요.

예능이나 드라마나 아님 하다못해 여기 브런치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이는 소재가 외도 아닐까요?

어찌 보면 그만큼 흔한 일이기도 하니 이렇게 쉽게 여기저기에 노출되는 거겠지요.

그렇지만 막상 당해보면 당사자에게는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상처는 죽을 때까지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빠가 안 계신 지금까지도 엄마는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우시면 아빠의 외도를 생각하며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아빠의 그리움을 누르신대요.

배우자의 외도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배신감이 아닐까요?

엄마만큼의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저도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비록 허름하고 보잘것없던 아빠라는 지붕이 무너져버린 순간이었죠.

아빠는 믿을 사람이 못되구나가 뼈에 사무치던 그날의 기억.

아빠는 알고 계셨을까요?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에게 제대로 된 사과라도 하셨을까요?

자식들에게 말로 직접 사과는 안 하실 분이지만, 최소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갖고 계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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