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허기
아빠!
아빠는 밥에 집착하셨어요.
밥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음식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일곱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김치찌개 하나에 밥을 먹을 때에, 몇 점 없는 돼지고기도 항상 아빠 몫이었죠.
아빠에게는 큰 딸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막내딸도 그 누구의 입에 고기가 들어가는 것도 관심이 없으셨고, 오로지 본인에 입에 들어가는 것만 중요했어요.
워낙에 언니 둘과 오빠는 먹는 일엔 관심이 없었고, 나랑 둘째 언니는 육식 파라서 눈치 없이 그 와중에도 고기를 골라먹곤 했는데, 전 어릴 적이라 기억이 없는 건지 몰라도 그런 일로 아빠 눈치를 본 기억은 없는데, 둘째 언니 말로는 자기가 고기를 계속 먹으면 아빠가 젓가락으로 상을 콱콱 찍었대요. ‘그만 먹으라’는 뜻이었죠.
아주 가끔 생선구이가 올라오면 그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식구가 일곱 명인데도 꼴랑 두세 마리 구워서 그 접시는 딱 아빠 앞에 있었죠. 그래서 아마 아빠 옆자리가 명당 자리였나 봐요. 둘레상이라면 맛있고 귀한 음식이 있으면 가운데에 둬야 하는 건데 엄마는 항상 아빠 앞자리에 두셨죠.
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서는 눈치가 좀 생겨서 어릴때처럼 전투적으로 먹지는 않고, 맛있는 반찬이 올라오면 아빠보다 밥을 늦게 먹으면서 아빠가 남기기만 바랬지만, 아빠는 좀처럼 남기는 법이 없었어요. 엄마도 아빠가 다 드신, 몸에는 가시만 남은 생선 머리만 드셨구요.
그렇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아빠가 한심했어요.
나이가 몇인데 먹을 것에 저렇게 집착할까 속으로도 욕하고 가끔 언니들과의 단톡방에서도 아빠 흉을 많이 봤었죠.
내가 자식을 키우다 보니 전 절대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나 혼자 맛있는 거 먹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죠.오히려 특별한 날 남편이랑 둘이서 외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끼리만 먹기가 미안해서 다음에 꼭 애들이랑 같이 오자 다짐하곤 했는데, 아빠는 자식보다 오직 본인만 중요하신 분 같았어요.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남편이 애들 먹는 속도를 고려 안 하고 빠른 속도로 애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먹어치우면 그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요.
아마 그 모습에서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었나 봐요.
아빠는 삼시 세끼 새 밥을 드셔야 한댔어요.
나는 “어떻게 매끼 새 밥을 하냐 그냥 아침에 좀 많이 해서 뜨거울 때 바로 퍼놨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똑같다”했지만, 아빠가 싫어하신다고 엄마는 귀찮아하시면서도 , 아빠 흉을 보면서도 꼬박꼬박 새 밥을 해드렸죠.
양조절을 실패해서 남은 밥은 항상 엄마차지였죠.
세상에 찬밥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엄마는 식은 밥 좋다면서 그 남을 밥을 드시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빠가 더욱 미웠어요.
내 눈에 엄마는 항상 불쌍하고 애처로운 분이셨거든요.
이기적인 남편과 사는.. 난 절대로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만드는 엄마..
아빠는 젊을 때는 신과일은 안 드셨지만 차차 사과도 드시고 포도도 하셨죠.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었던 것 같아요. 부유하진 않았지만, 여름이면 아빠가 수박을 좋아하셔서 냉장고에 수박이 끊이질 않았던 것 같아요.
결혼 후에 엄마랑 아빠가 몇 개월간 우리 집에 머무르셨던 여름에 수박을 끊기지 않고 드시도록 사드렸죠.
전 애들을 키우면서 수박을 사면 항상 깍둑썰기를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수박을 드시는 걸 봤는데 아빠가 빨간 부분만 골라 드시고 흰 부분이 있는 것들이 남으니까 엄마 보고 드시라고 하는 걸 봤어요.
개인적으로 덜어드리지 않은 제 탓일까요.
참외를 드실 때는 가운데 부분만 골라 드시는 아빠를
봤죠. 그날 이후로 참외를 자를 때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랐죠. 아빠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구는 게 너무 미웠거든요.
그렇게 저는 식탐이 있는 아빠를 미워했고, 항상 ‘오늘은 또 무슨 미운짓을 하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아빠를 관찰한 것 같아요. 성격상 또 그런 걸 보면 속으로 삭이는 게 아니고 입 밖으로 표출했으니 아빠도 아셨겠죠. 제가 아빠 미워하고 있다는 거.
자식이 자기를 미운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마음이 어떨까요.
그땐 몰랐어요. 제가 아빠를 더욱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요. 그냥 넘어갈 일도 하나하나 곱씹으며 미워했어요.
어릴 때 아빠가 엄마한테 못되게 하는 행동들을 많이 봤었어요. 아빠는 엄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엄마에게 오히려 당당하게 구셨죠.
저에게 아빠는 아빠이기 이전에 악인이었고, 저에게 엄마는 마냥 착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약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두 분이 말다툼이라도 하는 걸 보면 앞뒤 사정없이 엄마 편을 들기도 했죠.
아마 그때부터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돌아가 시 전 병원에 입원하셔서 이런저런 검사하느라고 금식을 하셨어야했죠. 병원 침대에 누워 다른 검사를 하러 가시면서 복도에서 마주친 언니한테 고작 하신 말씀이 “밥도 못 먹었다” 하실 정도로 굶으면 세상에 무슨 일이 날 것처럼 구셨던 아빠.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의 식탐은 식탐이라기보다 당신의 마음의 허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일찍 돌아가버리셔서 아빠의 기억에 아예 없는 아빠의 아빠 그리고 친엄마인 줄 알았던 엄마는 키워준 엄마였었죠. 그 사실도 키워 준 엄마가 아닌 동네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중학생 즈음에 들으셨다죠.
아마 아빠는 그때 결심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먹을 건 내가 챙겨야겠다!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나를 챙겨야겠다!
나는 내가 세상 누구보다 귀하다!
그래서 자식도 아내도 아빠 자신보다 귀하게 여기신 적이 없으셨나 봐요.
아마 아빠는 드셔도 드셔도 정서적인 허기가 채워지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밥에 집착하셨나 봐요.
아빠에게 밥은 삶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서야 아빠를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보려고 해서 죄송해요.
살아계실 때 아빠를 좀 애처롭게 보아줄 걸,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걸.. 후회로 가슴에 멍이 듭니다.
행복하게 살겠다는 약속을 지켜내기가 너무 힘드네요.아빠는 저를 용서했을까요…
아빠 한없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미련한 딸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사랑한단 말로 저의 잘못을 덮어버리려는 것 같아 차마 사랑한단 말은 하지도 못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