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가의 토토 Oct 29. 2024

강화도 밴댕이회무침

“다음 주 수요일에 느그 아빠가 밴댕이회 먹으러 강화도 가자고 하더라”


웬일로 깍쟁이 아빠가 뭘 사준다는 거지?

속으로 생각했지.

먹어 본 적이 없기에 별로 땡기지도 않고 그냥 한국에서의 일정이 며칠 안 남았으니 엄빠랑 바람 쐰다는 마음으로 다녀와야겠다 생각했지.


화요일 저녁에 식사를 물리고, 무료하신 아빠를 생각해서 언니가 고스톱이나 한 판 치자고 했지.

고스톱 쳐서 딴 돈으로 내일 강화도 밥 값 내자고.

난 말했어.

“싫어!!! 어차피 아빠가 사기로 했는데 고스톱을 왜 쳐? 아빠가 무조건 따실 건데! “

그때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아빠의 고함치며 들리는 대답

“내가 언제 산다고 했냐!!!!!! 그냥 데려간다고 했지!”



아…. 인솔자 하신다는 거였구나.

결국 그날 밥값은 엄마가 내셨지.

솔직히 그 밥값이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어.

근데 나는 아빠가 사주는 밥 먹고 싶었어.


예전 예전 한 20년쯤 큰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

이민 나와서 한 번씩 한국 다녀오면 다들 이건 친정 엄마가 사줬다, 이건 친정 아빠가 사줬다 그렇게 자랑질을 한다며. 언니는 부모님께 받은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비상금 만들었다가 드리고 온다 했지.

나는 그때 결혼 전이라 그게 뭐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

근데 결혼하고 나니까, 가끔 친정의 경제적인 지지가 어깨에 힘을 주게 만들기고 하고, 또 반대로 나같이 경제적으로 아무 도움이 없는 경우에는 괜히 기죽고 그러더라.



이민 후에 9년 만에 한국에 갔지.

사실 이민 후 처음 몇 년 동안 나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한국을 갈 엄두조차 못 냈어.

비행기값도 부담이었고, 가면 부모님께 용돈이라도 드리고, 밥이라도 사드려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

애들도 아직 어려서 남편에게 애 둘을 맡기고 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지.

그런데.. 시나브로 우울증과 향수병이 나를 잠식시키고 있었어.

엄마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한국을 안 가면 미쳐버릴 것 같았어.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나오고.

애 둘과 남편에게 퍼주기만 하는 사랑을 하다 보니 나에게도 사랑을 채워주고 싶었어

난 그때 나안에 에너지와 사랑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거든.

남편에게 말했어.

나 한국 가야 될 것 같다고.

이민 9년 동안 한 번도 그런 말 없이 묵묵히 독박 육아하고 살아왔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좀 의외였겠지.

(물론 지금도 남편은 그때 내가 우울증을 겪은 걸 모르지…)

근데 내가 너무 강하게 말하니까 알았다며 다녀오라고 했지.

수중에 몇십만 원만 들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지.

한국 가서 어릴 적 막내딸이 돼보고 싶었어.

어릴 때처럼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엄마랑 자고 엄마 젖도 만지고..

아빠한테는 워낙 기대가 없었어.

원래 베푸는 분이 아니시니까.

근데 딱 하나 매일 루틴처럼 다녀오시는 오후 산책 중에 붕어빵 한 봉지만 사 오시면 좋겠다. 그거 사 오셔서 무심히 던져주시면 좋겠다. 속으로 매일 바라고, 항상 외출 후 돌아오시는 아빠의 손끝만 바라보았지.

붕어빵 크기만큼의 사랑의 표현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어.

그런데 아빠 손은 항상 텅 빈 손…

아빤 자식을 ATM기계쯤으로 생각하셔서, 자식에게 뭔가를 사준다는 건 아예 상상이 안되시는 것 같았어.

언니 오빠가 워낙 효자 효녀들이라 그렇게 길들여 놓은 것도 있지만, 아빠는 밖에 나가면 그렇게 기분을 잘 내신다는데 집에서는 , 자식들에게는 하물며 엄마에게도 돈을 그렇게 아끼셨지.




그렇게 아빠가 밥 값 안 내실 걸 알고 나랑 언니는 아빠 흉을 보면서 강화도로 가는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지. 역시 우리 아빠 짠돌이.. 이런 레퍼토리로 예전 일들까지 곱씹으며..

기대도 없이, 기분도 뭐 썩 유쾌하지 않은 채.


근데 회를 하나 집어먹고는 그 모든 감정이 반전!

기분이가 너무 좋아졌어.

회무침도, 곁들어 나오는 꽁치구이랑 간장게장까지도 그리고 부족하면 또 주겠다는 사장님의 푸짐한 인심에도 반했지.

거기에 곁들여 기분을 한껏 업 시켜줄 막걸리까지.

마지막엔

회무침에 밥까지 비벼서 야무지게 한 그릇 뚝딱!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 아빠.

비록 아빠가 돈은 안 냈지만, 이런 추억 선물해 줘서 고마워.

이제 밴댕이무침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겠지.

아직은 아픈 기억이지만, 언젠가는 웃으면서 이 사진들을 볼 수 있겠지.



아빠,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

태어나게 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게 부모인데, 자꾸 바라고 원망해서 미안해.

사랑한다 말 못 해줘서 미안해.

많이 웃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맛있는 거 많이 못 사줘서 미안해.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