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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를 아시나요?

by 창가의 토토

양하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저 식물을 머릿속에서 꺼내 실체화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저 식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지 아님 내 상상에 의한 이미지인지도 많이 헷갈렸다.

지난번에 노란 분꽃이 나를 어린 시절의 나로 이끌었을 때 또다시 저 식물이 기억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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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서울로 장사를 가시던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직 숫자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라 대체로 몇 밤을 자야 엄마가 오시는지에 대한 계산도 없이 그저 오시면 오시나 보다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나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쓸쓸함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다.

약간의 우울감 같은 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제일 부럽다.

누구에게 거부당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든든한 자신감

반면 나는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보통 내가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길 기다렸고, 그래서 인간관계의 폭이 그리 넓지 못했다.

그런 나의 성향은 왜 그럴까 자주 고민해 보았는데, 나는 주양육자에 대한 신뢰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에 나에게 우주였던 엄마가 갑자기 서울로 장사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내가 원치 않았던 이별을 경험했고, 며칠 만에 (혹은 몇 달 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오셔서 너무나 행복한 기분에 젖어있을 때쯤 엄마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셨다.

나에게 간다고 인사를 하고 가시면 울고 불고 떼쓸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인사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나는 불안도가 높은 아이로 커갔다.

엄마가 안 계신 자리를 누군가는 메워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겠지만 그 자리를 감히 어느 누가 메워줄 수 있겠는가


어릴 적 자라던 시골에 방문했을 때 이모부가

“느그 이모가 그때 너를 얼마나 짠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는 말씀에서 난 얼마나 처량한 아이었을까 생각하며 어린 시절 가엾은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가 가시면 주양육자는 아마 아빠셨나 보다.

할머니도 계셨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은 별로 없다.

역시나 나중에 언니 오빠들과 얘기해 본 결과 할머니는 큰손주인 큰언니와 우리 오빠에게만 지극한 사랑을 주신 것 같다.

그렇다고 아빠와의 다정한 기억이 있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바로 저 ‘양하’의 기억이 마치 사진처럼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여태껏 그 이름도 몰랐는데 며칠 전 가족 카톡 방에서 분꽃과 함께 기억 소환된 저 식물에 대해서 누가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냐 하니까 역시나 우리 중에 제일 기억력이 좋은 바로 위에 언니가

‘떡 찔 때 깔고 찌던 거’라고 힌트를 줬고

엄마가 ‘그럼 양해잎인데? ‘ 하고 기억해 주셨다.

아마 전라도 사투리로는 양해인가 보다.

네이버를 찾아보니 양하라고 나온다.


나에게 양하란 아빠를 기억하게 하는 식물이다

어릴 적 네다섯 살 꼬마 여자아이를 우물가로 데려다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박박 세게 문질러 세수시키던 아빠.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고 목에 수건을 두르신 후 오로지 어린 딸 때 구정물 빼는데만 집중하시던 아빠가 거기 있다.

아빠 입을 통해 나오는 말 한마디는

“힝~해!!” 뿐

콧물까지 쏙 빼고 나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아빠가 세수시킬 때 거칠고 투박한 손놀림이 싫어서 아빠랑 세수하는 게 싫었다.

서러움 때문인지 아파서 그랬는지 눈에 눈물이 고여 초점도 없는 눈으로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때 항상 내 눈앞에 띄던 것이 바로 저 양하였다.

우물가 주변에 있었으니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었나 보다.

그때 양하에서 나던 냄새가 있었다.

네이버 검색에 의하면 양하가 생강과 에 속한다고 하니 그런 비슷한 냄새가 나겠지만, 나에게 양하의 냄새는 비릿하고 좋지 않았다.

어쩌면 아빠와 세수하던 그 기억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있던 양하의 냄새도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아빠가 그리운 이제는.. 양하의 비릿한 냄새가 너무 그립다.

아빠가 그립다..

어딜 가야 양하를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아빠는 손에 닿을 수 없지만,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전라도에 간다면 그 시절의 양하를 만나서 코에 박고 냄새에 취해보고 싶다.

그럼 내가 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저편에 있는 아빠와의 추억이 더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분명 그 시절 어리고 작은 딸을 세수시키던 아빠도 ‘사랑’이었을 텐데 난 왜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았을까..

다정함에 배어있지 않다고 사랑이 ,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닌데.. 그런 것을 알기에 나는 그때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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