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이 녹아있는 곳
작년엔 아빠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망자가 되어버린 아빠로 인해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방문해야 하는 곳
앞으로 더 그곳에 갈 일이 있을까 싶다.
아빠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곳
그래서 하늘로 여행가시기 전에 그곳으로 여행 가시기를 그렇게 갈망하셨고, 결국 어린 시절 친구분들과 나들이 중에 사고를 당하셨다.
그곳은 나의 고향이기도 했기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추억으로 인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고, 엄마처럼 온전히 나를 품어주던 곳이었는데..
이제 그곳은 아빠의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아픈 곳이 되어버렸다.
80이 넘으신 노모의 일상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해서 거의 정확히 4시에는 일어나셔서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가신다.
매일을 하나님을 붙잡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젊은 날에는 삶의 무게가 본인이 감당할 만큼을 넘어서서, 자신의 멍에를 하나님께 다 내려놓아야 하루를 시작하실 수 있었던 우리 엄마
엄마에게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엄마의 삶은 지금까지 지속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떠나셨을지도 모르겠다.
자식들에게도 채 다 말하지 못한 엄마의 소설 같은 삶.
듣다 보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키워내신 엄마가 감사할 뿐이다.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님께 쏟아내고 위로를 받으시며 이날까지 잘 버텨주신 우리 엄마.
그런 엄마가 그날은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에 컨디션이 아주 안 좋으셨다.
시골을 가기 위해 오빠가 7시에 집으로 픽업하러 온다고 해서 6시에 알람을 맞춰뒀는데, 5시 반부터 엄마는 너무 분주하셨다.
내가 한국에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엄마는 내가 가기 전에 먹고 싶다고 말했던 것들을 다 해주시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언젠가 같이 시장을 갔다가 ‘아욱국이 먹고 싶다’는 말을 흘려듣지 않으시고, 그 새벽에 엄마는 아욱국을 끓이셨다.
그러고 나서도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통에 나는 잠이 깨버렸다.
아침잠 많고 잘 때 누가 깨우면 미친 듯이 짜증을 내는 나는
“엄마!!! 제발 좀!!!”
이라고 소리를 쳤고, 평소 같으면 별대꾸 안 하시거나 부드러운 말투로
“그만 일어나~”
하실 건데 그날은 엄마의 말투가 상당히 매섭고 날카로웠다.
“그만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잘 꺼야!!!?”
말투에 화와 짜증이 엄청 묻어났다.
“아니 엄마 내가 얘야? 내가 알아서 일어나지. 알람 다 맞춰놨는데 왜 그래? 오빠 오려면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도대체 왜 그래?”
엄마가 평소 같지 않음을 느꼈을 때 그만했어야 했는데 엄마의 짜증을 난 더 센 짜증으로 받았다.
결국 그 새벽에 엄마랑 작은 말다툼이 오갔다.
나도 나대로 기분이 안 좋았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신 엄마의 눈과 코가 빨갛다.
울고 나오신 게 틀림없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짜증의 원인을 그때서야 알게 됐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의 미련하고 둔하고 센스 없음에 화가 났다.
엄마는 그곳을 가시려니 아빠에 대한 기억이 너무 진하게 떠오르신 거였다.
불과 몇 달 전에 시골로 여행을 가실 때 들떠 있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이 나셨을 거다.
그날 이후 다시 집으로 오시지 못하고 머나먼 길을 떠나신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절망감.. 만감이 교차했을 텐데
이 부족하기만 한 철없는 딸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날은 오히려 내가 엄마 마음을 미리 알아차려서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드렸어야 했는데..
무거운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향하면서 언제 엄마에게 사과의 말을 건넬지 기회만 보고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내렸을 때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오늘 시골 가시기 싫으셨어?
그래서 마음이 너무 불편하셨던 거야? “
“…… ”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지만, 꼭 대답을 해야 긍정의 의미는 아니니까..
너무 죄송했다.
뒤에서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우리 OO 씨 미안해요~. 속상한 맘 몰라줘서 미안해요. “
여전히 아무 말 없으셨지만, 나의 포옹을 뿌리치지 않으셨으니 그걸로 됐다.
나에게 아빠가 돌아가신 슬픔이 당연히 크지만, 60년 가까이 삶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아빠의 부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겠지.
엄마가 이 시간들을 잘 극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엄마! 부디 사랑하는 우리 자식들을 봐서라도 잘 견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