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살이 건물 뒤로 뒷걸음을 치고 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하루는 느리고 느슨하다.
시간은 마치 정박해 있는 듯 버림받고 있다.
공간은 선 하나로 여백을 다 채운 그림처럼 단순하다.
말이 필요 없다.
한다 한들 들어주는 이도 없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뜻미지근한 감정은 널뛰듯 휘청 뒤섞인다.
검증 안 된 의지력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다 말다 한다.
멍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어도 거리낄 게 없다.
게으름이 아닌 단련된 여유 부림이다.
반복됨이 습관 되어 벗어날 의지마저 해체된다.
삶을 영양가 있는 날과 없는 날로 구분하긴 뭐하지만 이런 날은 몸도 맘도 생각도 제각각 개성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여 영양가 있음이 분명하다.
몸 따로 맘 따로 생각 따로 제목을 따로국밥으로 붙일까 하다가 잔뜩 멋을 부려서 느림의 미학이라고 가져다 붙인다.
느림의 미학이란 단어가 사치를 부린 듯 생경하다.
일부러 시간을 쪼개서 챙기지 않아도 되는 이런 게으름 같은 여유를 느림의 미학이란 이름으로 바득바득 우기며 누린다.
여름 한낮은 길기도 하다.
엷게 펴있던 구름도 몽실 거리다가 흩어진다.
관성처럼 움직이던 시계추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작열했던 태양 빛도 약해진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