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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Aug 09. 2020

먹고 쉬고 경험하고 -절호의 찬스가

아들이 포닥 과정을 마치고 서둘러 귀국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2주간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해외 입국자들은 코로나 예방 안전규칙에 따라 가족과도 격리되어야 한다. 혼자서 보낸 시간이 많은 아들은 격리생활도 대수롭지 않은 듯 신경 쓸 것 없다고 누누이 말한다.
보고프고 먼저 챙겨주고픈 마음은 앞서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남편과 나는 2주 동안 시간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광주에서 이틀간 머문 뒤, 완도로 가서 지내다가 제주도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완도에는 둘째 언니네가 아담하게 지어둔 별채가 있다. 2천 평 땅에 비파, 황치 나무를 비롯 다양한 유실수와 옥수수 등을 심어놓고 관리를 위해 가끔씩 다녀가는 곳이다.
드넓은 초록 대지와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이며, 푸른 바다가 보이는 멋진 풍경을 두루 갖추고 있다.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없는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우리가 지내기에 완벽했다.
잠시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젖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시작. 그랬다. 하얀 철대문을 여는 순간 뭔가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조짐이 느껴졌다. 안 좋은 예감은 왜 그리 맞아떨어지는지.
우리를 격하게 반기는 건 넓은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풀과 흡혈귀처럼 달라붙는 모기와 벌레들이었다.
마치 우리를 자신들의 향연에 초대한 듯 엉겨 붙고 쏘아대고 기발한 환영식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잡초와 모기, 벌레와의 소란스럽고 요란한 신고식을 한바탕 치르고 정신줄을 잡고 보니 확 트인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이름은 삼두리. 이름도 정겹다.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을 지나면 기다랗고 하얀 대문이 보인다. 담장은 키가 큰 짙푸른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있고 옆엔 조그만 실개천이 흐른다. 초록이 무성한 넓은 뜰은 소박하고 싱그럽다. 고개를 조금 빼고 보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뚫린다.
지척에 청소년 수련원이 있어 산책 나들이도 안성맞춤이다. 수련원 근처에는 산 전체가 동백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 동백꽃이 필 무렵에 오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다.


모기와의 전투는 상흔을 남기고

체질 탓인가? 유난히 내 피만 좋아하는 모기들의 극성은 기피제를 암만 뿌려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급기야 바깥출입마저 공포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남편과 같이 있어도 어찌 알고 나만 난사를 해대는지 온통 헌혈 자국으로 도배되고 부풀기까지 했다. 
나는 매일 온몸에 기피제를 뿌리며 모기약 분사에 열을 올리고, 모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핵폭탄 미사일로 나를 정확히 쏘아댔다.
나와 모기 그리고 벌레와는 공생이란 아량을 베풀 수 없는 수가 되었다. 낭만과 여유는 개뿔. 나의 잔인성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휘갈림과 살충을 위한 투하만 보여주고 말았.


잡초와 한판
한적한 시골 풍경의 고요함과 푸르름의 정서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도 반전이 섞인다.
눈에 보이는 푸른 초원은 가냘픈 풀이 아닌 잡초 천국이다. 경작지를 침범한 잡초는 억세고 질긴 침투력으로 온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미 잡초라고 명명된 것은 키우는 게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다.
언니네가 자연친화적인 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잡초 제거제와 농약은 일절 쓰지 않고 있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집을 지어놓고 그림 같은 풍경에 일조를 하고자 애써서 조경해 둔 것들이 도무지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위나무의 아치형 그늘막과 큼직한 화분들, 폼나는 나무들 사이에도 잡초는 제 집처럼 버젓이 차지하고 질서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난 그걸 너그럽게 봐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잡초로 묻혀있는 마당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주고픈 마음에 용감하게 팔을 걷어붙였다.
서툰 호미질과 낫질을 해댔더니 과다 의욕으로 얼마 하지도 못하고  땀으로 범벅된 몸뚱이와 모기들의 등쌀에 혼절하듯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시골 햇살은 가려도 가려도 투사력이 최고다. 우리의 총체적 부실함은 좌고우면 할 것 없이 바로 두 손 두 발을 들게 했고 잡초고 뭐고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기까지만 만족해야 했다.

여행이란 이름으로
계획대로 진행을 하자면 제주도를 가야 하는데 날씨가 오락가락 변덕이 심했다. 노선을 바꿔서 완도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완도는 언니네가 원동에서 광어 축양장을 하고 있어 휴가 때면 즐겨 다녀간다.  

이미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녀서 이젠 달리 갈만한 곳은 없다. 그렇지만 유명 관광지는 해마다 철 따라 개발되고 볼거리가 새롭게 생겨난다.
완도도 올 때마다 가 볼 만한 곳이 늘고 있었다.

여행 와서 먹는 즐거움을 빼고 논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내는 동안 형부와 언니는 먹거리, 볼거리의 무한 제공으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 중 해산물 특히 생선회 킬러인 나의 식성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어 광어회와 전복, 뿔소라까지 입에서 냄새날 만큼 포식을 하고 만다.
광주에 계신 친정엄마도 모셔와 완도 약산의 진달래공원을 구경하며 유명하다는 흑염소까지 섭취하고 보니 영양보충까지 포화상태가 되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시간 속에

하루하루 일정은 날씨 따라 변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날이면 배를 타는 걸 주저하고, 구름이 잔뜩 몰려와 어둑한 날엔 산행 나들이를 망설였다.
게다가 후덥지근한 날씨와 오락가락한 호우주의보는 간간이 발목을 잡았고 들뜨던 마음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며 방황해야 했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아까워 감행한 해남 대흥사 탐방은 인적도 드문드문 한적했고, 두륜산 케이블카 산행은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 풍경만이 우릴 반겼다.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던 남편은 며칠 후, 혼자서 두륜산의 두륜봉, 가련봉, 노순봉을 기어이 종주했고 정복의 희열에 무척 신나 했다.

8월로 접어들면서 서울, 경기, 중부지방의 집중 호우로 본격적인 장마 소식이 이어졌지만 남부지방은 폭염과 흐린 날씨가 반복되었다.
안개가 잔뜩 낀 날은 배가 운항하지 않는다 하여 청산도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 날을 잡았다. 다행히 가는 날은 쾌청했다.
휴가 때면 청산도 가는 많은 여행객들로 엄두가 나지 않아 번번이 가기를 꺼렸지만 이번엔 나서기로 했다.
코로나의 위력으로 여행객들이 별로 없었다. 어딜 가나 한산하고 썰렁한 모습들이 보는 내가 미안해지고 걱정스러웠다.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가야 할텐데..코로나로 인해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 해도 현실은 심각하다. 여행하는 것도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원인 모를 두드러기
청산도를 다녀온 다음 날, 뭐가 잘못된 건지 내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두드러기의 가려움증은 참을 수없는 고통이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병원을 검색하니 완도대교 건너 남창이란 곳에 피부과가 있었다. 차로 가면 가까운 거리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첫 진료를 받으려면 시간을 앞서가면 되겠다 싶어  8시가 되기까지 꾹 참았다. 9시쯤이면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지만 놀랍게도 그 병원의 진료는 5시 30분에 시작하여 17시 30분에 끝났다. 도착하니 대기자가 많았다. 대부분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로 진료 후 물리치료를 받으시는 것 같았다. 이른 시간에 치료를 받고 다시 일하러 나가시는 그분들의 뒷모습에 뭉클함이 전해졌다.
진료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나의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까? 어쨌든.
시골 병원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병원과 진료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견디며 낫기를 기다렸으나 이틀이 지나도 별 차도가 없었다.
격리생활이 끝나는 날, 서울로 출발하는 아침에 다시 들러서 주사를 맞고 가려움만을 잠재운 채 올라왔다. 두드러기는 도착하고 나서 하루 더 병원 치료를 받은 후에야 감쪽같이 사라졌다.
발병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나의 두드러기. 곤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시골에서 얻어 온 선물꾸러미 속에 함께 따라온 두드러기를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외식으로 회포를 풀면서 그간의 격리생활과도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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