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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Oct 24. 2020

친구 해주는 날에

기가 꺾인 햇살이 어깨 깃에 머문다.

쓸쓸한 공허가 간간히 찾아온다.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다. 그 쓸쓸함과 친구 해주는 수밖에.

느낌은 살아있는 생명의 특권이라고 한다. 특권이 맞나 보다.

침묵의 대화를 나누듯 음악을 틀어놓고 말없이 동화된다.

얼른 나열하기 애매한 감성이 머뭇거린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기분이 지루해질 때쯤 눈길은 밖을 향한다.

노릇한 갈색 빛으로 변해있는 빛바랜 나뭇잎들이 가지 끝에서 팔랑댄다.   

변색해가는 나무들 사이로 스산함이 지나간다.

문득 남편의 머리에 시선이 꽂힌다.

염색은 사절이라는 자기만의 확고한 답을 갖고 있는 남편의 머리가 날이 갈수록 흰머리만 눈에 띈다. 내 머리카락을 본 듯하다.

“자연스러운 흰머리가 멋스럽긴 하지. 이번엔 나도 염색을 하지 말고 버텨볼까?”

지나간 말로 동조를 구해보지만 별 반응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염색에 대한 나의 결정 장애 레퍼토리는 반복된다. 그게 뭐라고.     

 

애꿎은 가을 탓을 하며 마음 한 자락이 바람에 실려간다.  

함께 있다고 마음을 다 얻는 것도 아니요, 멀리 있다고 마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형체도 없는 그리움에 서성인다.

세상을 다 뒤져도 영원한 내 것이란 없다고 하면서도 완성되지 않은 추억까지 꾸역꾸역 꺼내보며 마음이 아릿해진다.

나이만 먹었지 서툰 감정은 여전하다.

널뛰듯 지나가는 세월에 슬픈 시선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운뿐.

지나간 시간은 예의를 차리고 가만히 내게 물음표를 던진다.

삶에 채우고 싶은 빈칸이 여전히 많은지.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가 흐른다.

익숙한 가사에 귀를 기울여본다.

'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여유 있는 목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마치 가을날 예쁘고  낭만적인 길을 걷다 온 것처럼.  

이제 어둑해질 시간이 다가온다.

낭창거리던 햇살도 자취를 감춘다.

엷은 먹물처럼 어둠의 색이 번져오기 전에

쓸쓸함을 보내주고 이쯤해서 멈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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