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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코코엄마 Sep 18. 2019

본편 2-5: 미국에서 고위험 산모로 생존하기

임신성 당뇨 (Gestational Diabetes) 산모의 생존기

임신 초기에는 유산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입덧을 최대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고, 중기에는 정밀 기형아 검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고, 말기에는 아기를 너무 크지 않으면서도 기관이 모두 성숙한 상태로 출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바로 모든 산모들이 지나가야 하는 '임신성 당뇨 검사'를 통과하는 것일 겁니다.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결혼/임신/출산에 관련된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검사 전에는 맘 카페 등에서 보게 되는 안 좋은 말에 겁을 먹게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무사하게 통과하게 되고, 그러면 그 검사는 잊히게 된다" 라구요. 저 또한 임신 초기에는 의사 선생님들을 붙잡고 정말 안정적으로 임신이 됐는지, 갑자기 유산되지는 않았는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도)를 자꾸 물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을 당황시켰던 적도 있었고, 초음파를 하면서는 "이래서 엄마들에게 맘 카페를 금지시켜야 한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기는 미국입니다 ㅋㅋ 심지어 저는 한국/미국 맘 카페를 종횡무진하고 있던 시기였고요. 어디를 가나 잘 모르는 임신의 길을 가는 여자들의 마음은 똑같은 거죠). 그렇게 몇 번의 검사를 지나왔던지라 저는 내심 맘을 편하게 먹고 있었습니다. 1차 검사 때 포근해 보이시는 채혈사님께서도 "2프로 정도나 걸릴까 말까 한 거니까 맘 편하게 먹으렴"이라고 하셨던 말을 굳게 믿고 있었기도 했고요 (사실 이 말은 조금 틀린 말입니다. 아시안의 경우 체질+식단+유전의 내력으로 5-10프로까지 잡아야합니다. 저도 삼단콤보 모두 해당되구요.). 그렇게 1차 검사를 마친 뒤 결과를 듣지 않고 7월 초,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으로 preview trip을 떠났습니다.

회사 지원으로 먹었던 마지막 만찬들... 맛있었지... 행복했었어 ㅠㅠㅠㅠㅠ

그러나 저의 희망은 48시간 만에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월요일 새벽 여섯 시에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눈 비비며 일어나 받아봤는데 "음... 너 1차 검사 결과가 좀 높게 나왔어 (165mg/dL; 140보다 높으면 안 됩니다 ㅋ). 최대한 빨리 2차 검사를 해야 하는데 언제 올 수 있겠니?"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OH NO!!!!!!!"를 외쳐서 남편을 깨웠고요 ㅋㅋㅋ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심지어 저는 그 며칠 전부터 식단 조절을 하면서 몸 관리를 하고 검사를 받았는데 (샐러드와 단백질을 중심으로 먹으면서 과일을 좀 덜 먹는 것이었죠), 아슬아슬하지도 않은 수치가 나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 후로 며칠간 맘 카페에서 1차는 불통이었으나 2차에는 통과했다는 맘 카페의 여러 댓글들을 굳게 믿으며, 수박만 좀 덜 먹었어도 괜찮았을 거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피츠버그에 돌아가 2-3일 정도 몸 관리 (그때만 해도 식단 관리를 조금만 하면 좋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ㅋㅋㅋㅋ 하지만 이 검사는 체질과 호르몬이 중요한 것이지 공복 이전의 식사에 무엇을 먹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를 하고 다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복혈당을 제외하고 기준치보다 모두 높은 결과를 뽐내며 임신성 당뇨를 확정받았습니다 (85/189/183/155mg/dL; 식후 두 시간이 특히 안 좋습니다).



그나저나 혈당 수치가 200이 넘는다니 끔찍하네요 (출처: http://www.healtip.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4)

임신성 당뇨가 왜 안 좋은 지는 위 인포그래픽이 한 번에 설명해 주니 제가 이 글에서까지 쓰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임신성 당뇨가 되고 나서 제 세 달 동안의 삶이 어떻게 변했냐겠지요. 제 삶을 짧게 한마디로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심리적으로만 터지고 육체적으로는 거의 터지지 않는) 배틀 로열의 목걸이를 걸고 살고 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단백 저탄수 식단이라던가, 아시안식 대부분 금지라던가, 과일뿐만 아니라 모든 간식들은 대부분 줄여야 한다는 그런 것들 보다도 저를 힘들게 했던 건 빡빡한 스케줄이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손부터 닦고 혈당부터 재야 하고, 식사를 공수받기가 어려우니 뭐해먹을지를 매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해야 하고, 매 끼니마다 첫 술을 뜨면서 몇 시인지 체크해야 하고, 한 시간이 지나기를 전전긍긍 기다려 혈당을 재고, 수치가 높으면 바로 달려 나가야 하는, 이런 생활을 하루에 세네 번씩을 반복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게다가 임신성 당뇨를 알게 되는 극초반인 24-25주의 경우 정상 산모들과 체내 인슐린 양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큰 격차가 나게 됩니다. 즉, 익숙해질만 하면 식단관리가 더욱 어려워지고, 더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자주 운동을 하지 않으면 같은 양, 같은 메뉴를 먹어도 점차 혈당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러니 초반에는 내 몸과 혈당의 움직임을 배우기 위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관리가 어려워져서 바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일어나 있는 16시간 중에서는 거의 6시간 정도를 먹고 운동하고 관리하는데만 쓰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포닥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배려받지 못했다면 초기 수치가 안 좋은 저 같은 산모는 식단관리를 해주시는 아주머니분을 고용하거나 인슐린을 맞지 않고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저는 37주입니다 (출처: https://www.healthpartners.com/blog/possible-give-gestational-diabetes/).

이렇게 임신성 당뇨가 진단되고 난 뒤 제 미국 병원 라이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미국은 의료보험 체계가 복잡한 데다 '원인' 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4주 이전의 저는 (상대적으로) 어리고, 과체중도 아니었고, 과거에 유산을 했거나 만성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기도 기형아 검사나 초음파에서 문제없이 정상 범주 내에 들어가 있는, 그런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는 산모이니 (즉, 특별하게 관리할 '원인'이 없는 산모이니) 병원에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산모였습니다. 그냥 한 달에 한번 정도 문진만 하면 되고, 검사는 기본 기형아 검사 외에는 저 스스로가 찾아보고 예약을 해야 하고, 가끔 의사 선생님이 바쁘시면 임상간호사 님을 대신 만나고 집에 돌아가면 되는, 평범한 산모였습니다. 


하지만 25주부터의 저는 고위험 산모로 승격되었고, 일반 산모에 비해 내과/영상의학과/산부인과를 2-3배는 더 자주 돌아야 하고, 현재는 미국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는 잘 잡아주지 않는 유도분만까지 예약되어 있습니다. 항상 병원에서 좀 더 자주 불러줬으면, 좀 더 아기의 건강을 확인해 주었으면, 좀 더 질문에 답해주고 우리의 건강을 체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저를 fast track에 올려 태워준 느낌인데, 은근히 기분이 묘해지면서 좋으면서도 싫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아기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잘 커 오고 있고, 저 또한 진단을 받은 이래 세 달동안 2키로밖에 늘지 않아 만삭인 지금도 몸이 많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걷기도 자주 하다보니 체력도 상대적으로 좋아진 느낌도 들고요. 이제 튼튼이가 곧 무사하게 태어나서 엄마 아빠도 만나고 몇 가지 검사만 잘 통과하고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이 고비도 순탄히 마무리될 것이다 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임당 진단 이후에는 in-n-out에서 프로틴버거를 먹어야 했습니다. 버거가 얼마나 상큼하고 시원하던지! 이후에는 다신 안먹으려구요.

마무리하면서, 이 생활을 위로해주었고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근 세 달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여러 분들이 계시는데요. 지금 저를 담당하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은 성격도 좋으시고 환자를 편하게 해 주려고 많이 노력하시는 분이십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날 따라와. 우린 잘할 수 있어! 아기 낳고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좀만 힘내자고!"라는 식의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저를 기분 좋게 해 주시죠. 반면에 저를 윽박지르며 코너로 몰고 가던 영양사 선생님도 생각납니다. 그분은 혈당이 튀면 혈당이 튄다고 인슐린을 놓겠다고 협박했고, 그래서 관리한다고 탄수화물을 조금 먹으면 왜 덜먹냐며 아이 iq가 낮아지는 걸 보고 싶냐며 협박했었죠. 그래서 임신하면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었는데 욱해서 눈물이 나왔었는데요. 산모가 알아서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본인의 임무를 다 하기 위한 것임은 이해하겠지만 아직도 그분을 생각하면 맘이 불편합니다. 이제 곧 임신기간이 끝이 날 테고 이후의 당뇨 관리는 다른 영양사 선생님을 소개받아 그 분을 다시 만나지 않도록 조치하겠지만 앞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제 자신에게도 각인시키고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제 유도분만을 열흘 앞두고 있습니다. 친정엄마는 오늘 미국으로 들어오시고요. 입원하러 가기 전에 시즌 2 본편을 꼭 다 쓰고 갈 수 있어야 할 텐데.... 다음 편에서는 시즌2에서 다루고 싶었던 마지막 소주제인 "내가 공부를 하게 된 이유, 박사, 그리고 그 이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019/09/17

토피코코튼튼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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