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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코코엄마 Sep 12. 2019

본편 2-4) 고위험 산모가 되기 전까지

부제: 결혼부터 임신 25주까지

피츠버그라는 먼 땅에 와서 나와 닮고도 다른 평생의 인연을 만났고, 연애를 하던 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묘연을 만나고, 그렇게 사람 둘 고양이 둘의 가족을 만든 지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끔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이렇게나 작고도 큰 일들을 많이 거쳐왔구나 싶기도 하면서도, (사람도 고양이도) 처음 만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기도 합니다. 

연애초기였던 2014년 봄 (오른쪽), 결혼식을 올렸던 2017년 1월 (중간), 그리고 손님을 모셔놓고 고양이형제 쇼를 하는 2018년 말 (왼쪽) 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사실 고양이를 만났던 것이 저 자신은 예상하지 못했던 묘연에 인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라면, 신혼부부였던 저희에게 '언젠가는 해야 할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부부의 가족계획을 언제, 어떻게 이룰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2남 중 장남이었던 신랑과 1남 1녀 중 둘째 겸 장녀였던 저희는 연애하는 시간이 길어져 결혼에 가까워지면서도 '결혼을 하면 아기를 가지겠지', '너무 늦지 않은 적당한 시기에 가지면 되겠지', '서로가 두 자녀의 집 출신이니까 둘 정도 낳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계산이 하나도 되지 않은, 나이브하고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고, 박사 공부를 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고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핑곗거리를 앞세운 채 안온한 1년 반의 신혼생활을 보내왔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원래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거나 매우 가정적이고 희생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싫어하기도 했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와 신랑을 닮은 아이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제 삶의 유일한 목표로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부부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신혼생활도 어느 정도 누렸고 박사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인 지난여름부터 문득문득 막연하게 미뤄왔던 고민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대화 끝에 고민에서 확신으로 마음이 커지게 되면서 저희는 부부로서 다음 단계로 건너가 보기로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부의 다음 단계가 어느 곳에서 어떤 길로 펼쳐질지 모르는 때였지만, 자기 자신과 서로를 믿으면 '어떻게든 잘 될 것이다'라고 믿고서요.


그렇게 2018년 후반부를 약도 챙겨 먹고, 다양한 테스트기와 앱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찾아온 실망스러운 대자연의 날에 폭주/폭식을 몇 번 반복한 끝에 저희는 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준비하고 진행이 되고서야 아기를 원해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신기하면서도 감사한 경험이었죠. 신기하게도 잠시 한국으로 출장을 나와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 임신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둘이 되어 돌아가는 게 실화인가? 싶어 긴 비행 내내 기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좌) 12주 초음파 사진인데, 네 팔다리를 다 동원해서 발버둥을 치더군요...... 우) 한국에서 처음으로 해봤던 테스터기 인증입니다.


이렇게 2019년의 시작을 아기 튼튼이와의 만남으로 열게 되었는데, 사실 상반기에는 홀몸으로 살아왔던 30년과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임신 초기임에도 입덧도 전혀 없었고, 테스트기가 양성으로 뜨는 것만 빼면 딱한 변화가 없어서 진단 후에도 계속 테스트기를 달고 살면서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진짜 임신이 맞는 거냐고 묻기를 반복했었죠. 버릇을 다 고치지 못해 배가 많이 나오는 20주가 되기 전까지는 슬쩍 엎드려 자기도 했고, 원래부터 날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식단도 거의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굳이 변화라고 꼽아보자면 가끔 외식 가서 생각날 때 양심상 생선을 골라보려고 노력하는 정도였달까요. 학교에서 포닥으로 근무하면서 급한 프로젝트에 투입돼서 날밤을 지새우며 일을 하기도 했고요.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서 임산부용으로 옷과 속옷을 바꿔주는 정도였달까요. 그리고 살이 너무 찔까 봐 마지막 한 숟갈은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요. 


단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면 2018년에 두 번 정도 겪었던 급성 알레르기가 다시 한번 찾아왔었다는 거였는데, 얼굴뿐만 아니라 배에 번져서 고생했었습니다. 다행히도 피부 알레르기는 아기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만, 이미 중기 임산부였던지라 over-the-counter 약이나 먹는 약을 쓰지 못해 며칠을 피부과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이런 알레르기는 그 특성상 2주 정도 고생을 하고 스스로 가라앉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져 버리는데, 그렇게 작은 고비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를 제외하자면 사이사이에 일로 이사로 바빴지만 나름 씩씩하게 잘 지내는 임산부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렇게 25주 정도가 지나서 2019년 상반기를 잘 마무리했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저의 평화로운 임신생활은 장르가 바뀌게 됩니다. 굳이 말하자면 코믹 로맨스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처키가 눈을 뜨면서 호러 공포 스릴러로 대변화하는 정도였달까요? 바로 다음 편에서 "미국 산부인과에서 고위험 산모로 살아가기: 임신성 당뇨"로 이어가겠습니다. 

거기 있는 거 네 동생이야 인석아 ㅋ 토피는 아직 아가가 있다는 걸 잘 모르는지 그저 몸이 무거운 엄마에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출산이 2주 반도 안 남았는데... 부지런히 다 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09/11/2019

토피코코튼튼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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