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의 위성 Aug 26. 2022

니케, 첨성대 그리고 포항제철

니케에 관해.


니케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것은 정말 아우라가 맞았을까. 살면서 나는 아우라를 느껴본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건 미술관에 가서 대작을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아우라의 예시로는 대부분 세계적인 작품을 거론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태껏 '완벽하게 와, 이런 게 아우라구나'라고 강렬하게 느껴본 적은 없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내가 루브르에서 니케를 보고 느낀 감정은 정말 기묘한 것이었는데 내가 그것이 묻혀 있던 땅속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이 방금 막 땅 아래서 올라온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묘한 힘이 있긴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니케 다른 작품의 감상과는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까?

우선 나는 루브르에서 니케를 마주한 날이 오르세 미술관을 이미 한 차례 관람을 한 다음날이었다. 오르세에서 정말 수없이 많은 걸작들을 보았고, 인상 깊게 본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또한 니케를 마주하기 전에, 루브르에서 모나리자와 같은 많은 명작들을 관람했었다. 그렇게 작품들을 관람하느라 지쳤을 와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니케가 내 발목을 붙들었다. 여태 보았던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를 그 자리에 묶어두었고, 아주 오래도록 자신을 지켜보게 했다. 나는 막연히 아우라는 그림에서 발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붙잡는 건 조각이네? 심지어 온전하게 보존되었던 원본도 아니고, 조각났던 파편들을 다시 복원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기이하게도 강력한 생명력이 있다.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아주 깊은 호흡이 느껴진다. 우리는 거쳐갈 뿐, 그녀는 영원할 것만 같다. 



니케를 보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없는가? 설명할 순 없지만 기묘한 느낌. 그것에 의해 과거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첨성대.


경주에 놀러 가 첨성대를 보았을 때가 바로 떠올랐다. 대부분 모두가 학창 시절에 경주를 거친다. 그러나 어릴 적에 간 경주의 유적들이 뇌리에 깊이 남아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가장 명확히 기억하는 첨성대도 성인이 된 이후에 본 첨성대를 말한다. 첨성대는 생각보다 작다. 혹은 생각한 만큼의 크기이다. 하지만 힘이 느껴진다. 약간은 비틀게 서 있는 모습의 첨성대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주인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첨성대가 호스트이고 우리가 방문한 손님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첨성대의 중간쯤에 난 정사각형의 문은 오싹한 기운을 내뿜는다. 내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혹은 그 안에 엄청난 것이 있을 것만 같다. 기묘한 기분이다. 마냥 멋있거나 우아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나는 당시에 그것이 아우라라고 깨닫지 못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니케를 보고 나서 비교 대상이 생기고 데이터가 쌓이니 그것이 아우라라고 판명 났다. 오래도록 서있었을 첨성대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


포항제철.


고등학생 시절, 대학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포항공대에 간 적이 있다. 포항공대 캠퍼스 투어를 한 뒤, 포항제철도 단체로 견학하였는데 나는 그때의 아찔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역시도, 니케를 본 뒤 아우라였음을 깨닫는다.


현대의 아우라는 이런 게 아닐까? 거대한 몸집, 그리고 실제로 그것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압박감, 인간이 만든 인간보다 거대함에서 오는 신비. 인간이 만든 것인데, 그 앞에서 인간이 겸허해진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거대하고 압도적인 것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존재인 걸까? 거대함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진다. 버스 안에서 제철소를 지나치면서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저 시공간은 다른 곳에 있는데, 내가 잠시 엿본 것 같기도 하고 그 압도적인 부피에 짓눌릴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음울하고 한편으론 경이롭다. 


아우라를 배울 때, 대부분 성당에 걸려있던 그림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고 한다. 예배를 볼 때에만 열어 사람들에게 보였고, 그런 과정들이 아우라를 더해 주었을 거라고. 또 그때는, 원본의 힘이 컸을 시절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복제본을 볼 수 없었다. 사진도 인터넷도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명작들이 있다. 그것이 내겐 니케와 첨성대였다. 또 현대의 새로운 아우라를 지닌 것들도 태어나는 것 같다. 포항제철의 제철소 모습이 예술작품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떠나 '원본'에 집중한다면, 포항제철도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철소를 어떻게 복제하겠는가? 사진으로 한 번에 담기도 힘들고, 그것은 진짜로 기동하고 있기에 복제되기에도 어렵다. 그러니 진품(원본성)과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개념이 모두 충족되는 것이다. 


아우라를 느껴본다는 것은 어쩌면 경외감이라는 단어를 깨우치는 것이 아닐까? 

내게 '아우라'는 마냥 긍정적인 감상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나의 감각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맞다. 그리고 나는 종종 그것이 경외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다. 공경하면서도 두려운 감정. 마땅히 우러러보지만, 눈을 계속 마주하고 있지는 못하겠는 현상. 충돌되는 두 가지의 감정이 모두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느껴보는 것은 해볼 만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또 어떤 것이 내게 아우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절대로 잊히지 않을 순간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