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이 너무 바쁘다. 오랫동안 혼자서 무리 없이 해온 일이라 위에다 볼멘소리 해도 돌려받는 것은 한심한 눈빛이다. 예전에는 가끔 한두 명이나 오류가 나면 백업하고 용량에 맞게 정리하고 적당히 나누거나 삭제하면 그만이었다. 예전부터 특히나 음악이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문제다. 만들어내는 상상력이나 스케치들을 마구 쏟아내는 친구들은 정말 곤란하다. 수많은 악기의 화음을 동시에 상상할 수 있던 친구는 결국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오류를 뿜고 뻗었다. 그럴 것 같아 지켜봐 두고 있었기에 넉넉히 여유를 남긴 채 그를 시기하던 친구에게 넘친 영감을 나눠 보내고 복구했을 때 어딘가 잘못됐는지 귀가 안 들리게 됐다. 덜컥 눈치가 보였지만 언제나처럼 다시 화음을 만드는 것을 보고 모르는 척을 해버렸지만.
식은 땀나는 기억이었지만 그때가 그립다. 요즘은 다들 전화기를 손에 쥐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일 년이 걸릴 이야기를 하루에 쏟아내는 녀석들이 늘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보통 남녀가 한쌍 동시에 말썽을 부린다. 평생 걸려 쌓을 이야기들을 전화기에 열심히 갈겨대더니 일 년이 안돼 동시에 뻗어버렸다.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잊지도 않고 꾸역꾸역 기억해대니 탈이날 수밖에.
적당히 반년 정도 예전 기억을 서로 섞고 잠시 옮겨 테스트를 해본다. 이 일은 신경 써야 될 부분이 다양해서 복구할 때 잠시 이상해질 때가 있다. 이젠 없는 기억 속 장소를 자꾸 서성이는 이 남자처럼 한동안 저 주변에서 기시감을 느끼고 기억을 부정하면 금방 돌아올 일이다. 확인을 마치고 삭제 작업을 한다. 이 둘은 금방 또 오류가 날 것 같지만… 힘든 작업이었으니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 한잔을 만들어 가져왔는데 왜 실수는 다 지나야 보이는 것일까. 두 녀석이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 정렬을 잘못해 반대로 최근 기억부터 섞어 지웠나 보다. 황급히 휴지통을 열어보지만 섞여있는 둘의 기억을 이대로 복구했다가는 더 큰일이 난다. 기억이나 상상이 실재가 되곤 하는 일 같은. 차가운 커피잔에 흐르는 물방울에 한기가 느껴진다. 막상 손 쓸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더 큰 사고 날 것이 없는지부터 둘러본다. 다행히 저 둘이 하던 것이라곤 밥 먹고 둘만 있는 세상처럼 사는 것이었기에 더 이상의 문제는 없다. 한동안은 이유 없이 슬퍼하고 기시감에서 살고 방황하겠지만 금방 그 둘은 운명 같은 만남이라며 그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또다시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미리 둘러될 일을 생각한다. 갑자기 업무보고를 깐깐히 살펴보면 오랜만에 징계 먹고 스틱스에 다녀오겠지. 후회와 한탄들이나 들으며 새치기하지 말라고 열심히 줄 세우다 보면 그들의 심정을 직접 듣는 게 또 재미있는 부분이 있긴 해. 그렇게 되면 나중에 저 두 녀석도 거기서 볼 수 있겠지. 그럼 한번 물어는 봐야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 또 어떤 심정이었는지.
장르문학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저에게 조현병이 있은지 의심되기도 하네요. 그 부분도 나름 재미있어서 눠두긴 했지만 나중에 뭔가 달라진 것 같아도 놀라지 마세요. 기시감이나 오류가 아니라 제가 변덕을 부려 진짜로 바꾼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