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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코칭랩 Mar 22. 2021

드라마<나의 아저씨>와 내가 만났던  출소자 이야기

나도 그에게 따뜻한 한 사람이었기를..

지난 주말 날 밤을 꼬박 새우며 16편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다 보았다.

드라마 특히 연속극을 잘 보지 않는 나는 최근 몇 달 사이 드라마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있는 중이다.


비밀의 숲, 사이코는 괜찮아, 도깨비 그리고 이번에 본 나의 아저씨까지...


드라마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와 메시지, 만듦새 등이 상당하다는 생각을 연거푸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가장 최근에 본 두 작품 중 <도깨비>는 보는 내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게 했다면, 지난 주말에 본 <나의 아저씨>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여전히 어느 쪽도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 를 보고 문득 오래전에 만났던 한 남자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는 편안에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직업은 사람들의 직업, 진로를 함께 고민을 상담하고 컨설팅하는 커리어 컨설턴트이다.

이 직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10여 년 전, 고용노동부로부터 40대 초반의 출소자 한 명의 상담을 의뢰받았었다. 몇 번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전기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학원 등록 후, 학습을 잘하고 취업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출소자를 처음 만났는데.. 상담 도중 슬쩍 나오는 그의 이야기들은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놀랄 일들이었다. 몇 가지 안 되는 매우 단편적인 정보이지만 그는 감옥에서 20년을 넘게 있었다고 했고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했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이 6개인 육손이었다.


20년이 넘은 수감이라.. 이것은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아버지를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그것도 가중 범죄가 되는 존속살인..???? 은 혹시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속 생각이었다. 연쇄살인범 아니면 존속살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예상을 했는데 차마 연쇄살인범은 아닐 것이라 싶었다.


그는 사람 착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담 내내 매우 온순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사회에서 잘 갱생해보고 싶어 하는 의지를 여러 번 드러내었다. 나는 생전 처음 접한 무시무시한 '존속 살인범일지도 모를' 이 남자에게 이 분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 내내 그를 격려했고,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했다.


상담이 시작되고 한 달이 좀 지난 2월 14일 불쑥 상담실에 와서는 봉투 하나를 건네고 갔다. 봉투 안에는 초콜릿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일부러 산 것 같이 예쁘게 포장된 것들은 아니었으나 아마도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받은 초콜릿들을 모아서 가져온 듯해 보였다. 내가 고맙다며 가져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존속살해범이었을지도 모를 그때 그 사람


그 후 이 분이 전기공사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학원 등록을 돕고, 이제나 저제나 학원 개강을 기다리며 그 기간 동안에도 틈틈이 연락을 취하며 공부를 도우며 학원 자습실을 다니도록 격려하였었다. 그런데 학원은 학생 모집이 안 되어서 계속 연기되며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학원에도 오지 않고, 생활하고 있던 쉼터도 나갔다는 것이었다. 한 순간에 소식이 끊어졌고, 본인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극 중에서 전율을 돋게 했던 장면이 있다. 박동훈 부장(이선균)이 사채업자인 광일(장기용)을 찾아가 자신이 이지안(아이유) 대신 빚을 갚겠다고 하다가 서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박동훈은 광일이에게 그런다.


"왜 애를 패냐"고. 그러자 광일이는 대답한다.

"그 년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


이지안이 사채업자이며 평생을 괴롭히고 있는 광일이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부장은 놀라서 잠시 멈칫한다. 세상에 자신이 도와주고 있던 사람이 살인을 했다니..여기서 누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하기에 이지안은 평생을 사람들에게 정 주지 않고, 벽을 치고 살아온 것이었다.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들 조차 그런 자신을 알면 피해왔었기에...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박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아도 죽여"


이 한마디가 이지안을 결국 살렸고, 그리고 난폭한 사채업자가 되었지만 본래는 나쁘지 않았던 광일이도 결국 살린 말이 아닌가 싶다.




엔딩까지 너무 감동적이었던 <나의 아저씨>

"이제 편안에 이르렀는가?" "네, 네"

드라마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를 알 것이다.


그도 편안에 이르러있기를...


내가 만났던,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한 출소자.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40대 초반의 남자.

이 사람이 내게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지만, 출소자라는 사실, 육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힘들도록 만드는 모습이다.


2021년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편안에 이르렀다면 좋으련만...


육손이도 아니고, 출소자도 아닌 나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겨울 때가 자주 있는데..

그는 나를 만난 그 후로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싶다.

부디 과거의 어려움 속으로 되돌아 가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주 잠깐 스치듯 만났었을 뿐이지만,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일지도 몰라'라는 마음을 품고서도 그를 돕고자 했던 나의 마음과 행동은 진심이었으니 그에게도 자신을 돕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그리고 틀림없이 지금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주위에 있기를 바란다.


이지안에게 박동훈과 고철상 아저씨가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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