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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코칭랩 Apr 18. 2021

[나의 아저씨] 안 본 눈 삽니다.

3주전, 간만에 여유로운 주말이 주어졌다. 할 일도 마땅히 없고, 금요일 밤 잠들기도 싫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한편의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아저씨'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다.   포스터를 보니 중년 아재들의 생활 속 이야기인 듯 한데....이선균이 아이유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며 연인이 되는 그런 내용이겠지? 아..얼마전에 본 그 엄청난 비밀의 숲이나 시그널, 도깨비 같은 드라마들과 종종 vs 가 붙던데...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1화 부터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 전개 때문이었다. 시작부터 5천만원 뇌물 배달사고가 나질 않나, 전화기에 도청 어플을 깔지 않나..전혀 달달하지 않고 어둡고 답답한 내용들이 계속 되었다. 혹자들은 4화 정도까지가 진입장벽이라고도 하던데 나는 1화 부터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정신없이 달리고, 달려..

일요일 오전 11시까지 16화 모두를 보고야 말았다.


한마디로 놀라운 드라마였다. 그리고 계속 여운이 남았다. 계속 뭔가를 생각나게 했다. 계속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정신없는 초고속 스피드 관람을 하였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1화 부터 매일 1편씩 천천히 다시 보았다. 퇴근하고 1편, 또 퇴근하고 1편...그렇게 15편까지 다시 본 다음...16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이미 다 본 드라마임에도 아끼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화를 며칠 동안이나 묵혀 두었다.  어제서야 16화를 보았다.


이 드라마는 보고 나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수십년간 많은 영상물들을 봤지만 <나의 아저씨> 만큼 긴 여운이 남는 드라마는 처음인 듯 하다.

16화까지 다 본 나의 심정은


"안 본 눈 삽니다"


사람들이 드라마 보고 종종 하는 안 본 눈 산다는 농담을 내가 하고 있을 줄이야. 2번 정주행을 하고 나니 아무것도 몰랐던 처음 봤던 그 눈으로 이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저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줄곧 생각해봤다. 대체 왜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것인가. 참으로 별 중요하지도 않을 일일터인데도 스스로에게 궁금하여 계속 되뇌이며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내린 몇가지 결론은..


1.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들게 하는 드라마.


드라마가 끝나면 대부분 드라마 속 인물들이 어떻게 되길, 행복하게 되길, 그들이 맺어지길..과 같이 드라마 속 인물들의 미래에 축복을 한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박동훈과 이지안의 미래를 축복하기도 하면서도 '내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내가 힐링 받았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어' 라며 '나 자신'를 축복하고, 행복을 바라며, 자아상을 만들게 하는 매우 특별한 자기 자신의 후기를 만들게 한다는 점이었다. 즉, 드라마속 주인공들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인 나의  삶의 태도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공감하고, 힐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드라마적 '재미' 이상의 것을 시청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여운이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2.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다다를 수 있는 판타지.


이지안은 있어도 박동훈과 같은 상사, 후계동과 같은 동네와 친구들은 실제같지만 실재하기 어려운 판타지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내가 보기에도 후계동이 가장 판타지 같았다. 그런데..박동훈, 우리도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후계동 마을?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마을도 그랬다. 앞뒤집 다 친척이고 이웃이고...그런데 다 사라졌다. 즉, 더 이상은 없지만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추억 속 동네.


박동훈이 팀원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에서 예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었고, 코로나로 인하여 더 많이 바뀌었다. 퇴근하면서 '오늘 소주 한잔 할까?' '가볍게 딱 오백 한잔 하고 가자' 하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퇴근 하면서 약속 없이 그냥 뜬금 오백 한잔만 하자며 호프집에 갔다가 2천, 3천씩 마시던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리워졌다.

나저씨 속의 인물들과 배경은 리얼인듯 아닌듯, 그러나 엄연히 누군가의 추억으로 존재하는 그런 리얼 판타지였기에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더구나 우리 누구든 조금 노력하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3. 나도 그들처럼. 


직장에서의 정치싸움, 직장인들이라면 한두번쯤 겪어봤을 일이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가슴 속 이름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행복하자, 행복하자' 라는 동훈의 말처럼 행복하고 싶은데 이미 너무 먼 길을 왔거나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많이 놓친 사람들...등 각자의 인생을 대입해볼 만한 내용들과 대사들이 곳곳에 있었기에 나의 이야기 같은 감정 이입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 여운이 남는 것 같다.


4. 퍼펙트한 엔딩,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16화 마지막 까지 다다른 스토리를 더더욱 여운 남도록 한 것은 바로 엔딩이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정말 손에 꼽을 만하다. 이선균의 마지막 미소를 보며, 난 생각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라 본인도 연기를 하면서 힐링 된 것일 것이다. 지안과 함께 자신이 완전히 40 대 중반의 박동훈이 되어 배우도 힐링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미소가 나올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분명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들의 상황은 15화까지와 바뀐 것이 별로 없다. 아니 오히려 나빠지기도 했다. 정희는 겸덕을 만났지만 완전히 떠나보내야 했고, 기훈은 유라와 헤어졌다. 동훈은 아내 윤희까지 외국으로 보낸 완벽한 기러기가 되었다. 이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했다. 드라마 도중에는 동훈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윤희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16화에 와서는 그 윤희조차 동훈을 떠나 아들과 함께 하고 결국 동훈은 혼자 남겨진 것을 보니 동훈의 오열이 더욱 와닿았다.


이렇게 사정이 그다지 좋아진 것도 바뀐 것도 없는데, 드라마는 편안하다. 지(至) 안(安)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그저 마음을 바꾸었을 뿐이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상훈이가 아내와 재결합하고, 기훈이는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동훈이와 재회한 지안이는 밥을 사겠다고 한다, 전화 하겠다고 한다.

밥을 사겠다, 전화하겠다..이 평범한 말로 이루어지는 이 따뜻하고 화사한 봄날과 같은 엔딩을 위해 이 드라마는 달려왔나보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듯한 엔딩에 환호했을 것이다. 그들이 포옹한 것도, 미래을 기약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의 아저씨>의 여운을 이렇게 글로나마 남기지 않으면 계속 이 드라마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


이 작품을 보면서 드라마에 대한 오랜 편견을 바꾸게 되었다. 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작가와 감독의 성찰과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었다. 꼭 소설만이 문학이 아니었다. <나의 아저씨>가 문학이었고, 인문학이었다.


#나의아저씨 #나의 아저씨 #이선균 #아이유 #박동훈 #이지안 #후계동 #인생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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