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시골이었지만 제법 큰 극장이 하나 있었다. 영화 '시네마 파라다이스'에서 나옴직한 그런 극장이다. 극장은 학생 단체 관람이나 가는 곳이지 어린 학생이 함부로 제멋대로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랬던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친구 하나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위험(?)를 무릅쓰고서 왜 보러 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도 이 영화를 본 이후 일주일 동안이나 담임 선생님에게 불려 가서 야단 맞을까봐 조마조마한 새가슴으로 지내야 했었다. 여하튼 외국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명화극장을 꼬박 꼬박 보던 나에게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이 영화는 내용 하나 모르지만 그냥 보게 된 영화였다.
토요일 오후, 극장안에 사람은 몇명 없었고 쌀쌀해서였는지 영화를 너무나 긴장되고 몰입해서 보아서 인지 덜덜 떨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러닝 타임 3시간 50여분의 이 영화는 단숨에 나의 인생영화가 되었고, 그저 영화를 좋아하던 시골 꼬마에서 헐리웃 키즈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동네 담벼락 영화 게시판에 걸려 있던 온통 붉은 색의 강렬한 영화 포스터...영화에 빠지고, 레트 버틀러에 빠진 내게 클라크 게이블은 내 인생 최초의 우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인터넷은 커녕 비디오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던지라 영화와 배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원은 영화 잡지 'SCREEN', 'TV 가이드' 같은 것들이 고작이었다.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스크린 잡지에서 이 영화 특집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과 물물교환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레이프 가렛 브로마이드를 주고, 클라크 게이블을 받았던 것 같다.
OST인 '타라의 테마'를 듣기 위하여 라디오 영화 음악실에 엽서를 보내고, 용케 선정 되어 음악이 나오면 얼른 녹음을 했던 그 시절. 당시 세상은 조용필, 전영록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이 영화에 빠져서 허구한날 영화 음악실을 들었다. (조용필은 놀랍게도 한참 후인 90년대 후반이 되어 팬이 되었다...)
신문을 보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서울서 재개봉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원도 시골의 중딩이 놀랍게도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하여 아버지 서울행에 슬쩍 묻어 서울로 가서는 아버지 용무가 다 끝났는데도 서울에 며칠 지내겠다며 작전을 짜고는 고모네에 머무르면서 난생 처음 나홀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이 영화를 끝내 봤다. 스타 사진을 코팅하여 간직하던 시절...내게는 당연히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의 사진들이 여러 장 있었다.
라디오 생활영어 프로그램에서 매월 영화를 선정하였는데 이 영화가 선정되자 아침마다 눈 비비며 영어 방송을 듣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디오 테이프 그것도 한글 자막조차 없는 테이프를 구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서점에 가면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취미였던 나는 90년대 중반, 일본 유학시절 드디어 다큐멘터리집을 발견하고 구입했다. 일본에서 만난 이 책에는 팬으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내용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 클라크 게이블, 비비안 리, 가장 좋아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0대의 어느 한 자락에서 만난 이 영화는 20대 중반의 어느 시절에 일단락이 났다. 그때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2번, 비디오로 2번, TV로 5번 정도 보았으며 원작 소설도 3번을 읽었으니 첫사랑과 같은 작품에 대한 나의 도리는 다 한 셈이었다.
그렇게 첫사랑과 같았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서서히 퇴색되며 잊혀져 가고, 무뎌졌다. 더 이상 궁금하지도 설레지도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오랜 세월이 지나...
2021년, 우연한 기회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5월 2일, 스크린에 영상이 펼쳐지는 순간 나의 뇌는 무조건 반사를 하는 것 마냥 오래 전 10대 시절로 순식간에 나를 되돌리고 있었다.
1939년 미국에서 제작된 헐리웃 최고의 작품, 중학생 시절 영화의 세계로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뭔가 기념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들어 몇 장 찍었다.
영화를 보면서 극장에서 다시 보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또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될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애틀란타, 조지아, 뉴올리언즈, 아일랜드 등을 알게 되었고, 애틀란타에 가면 기념관이 있다는데 미국 가면 꼭 봐야지 하는 생각을 중학생때 부터 하게 되었었다.
어릴 적에는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 이야기와 스칼렛의 생존력에 대하여 봤다면 한참 어른이 된 지금은 전쟁의 참혹함, 전쟁과 역사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이 맞이하게 되는 변화가 훅 들어왔다.
4시간에 이르는 러닝 타임임에도 아쉬움이 있다면 방대한 원작 스토리를 후반부에 가서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레트와 스칼렛의 계속 엇갈리는 과정이 책에는 훨씬 섬세하게 나와 있어 볼 때마다 안타까왔는데 영화에서는 스토리 텔링에 쫓겨서 그 부분이 제대도 묘사되지 못한 것이 자못 아쉬웠다.
유명하지만 읽히지 않는 고전이 있다지만 원작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영화도 너무 잘 만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 당시 영화와 비교하면 진짜 어나더 레벨이라 생각한다. 헐리웃이 아무리 심혈을 만들었어도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냥 모든 것이 기록이다.
나의 첫사랑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나의 첫번째 우상 클라크 게이블.. 레트 버틀러...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늘 추억으로 가지게 된 멋진 것들이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끼고 있었던 클라크 게이블 판넬은..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지?
판넬이 사라지면서 나의 추억도 끝이 났던 것이었다.
그리고...그 추억이 오늘 되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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