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와 핫도그 Feb 07. 2021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핸드폰으로 초고를 써서 책을 완성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글을 쓰고 책으로 만들어 내는 멋진 사례였다. 그 작가님 말고 다른 분들도 오래전 핸드폰에 적어 놨던 초고를 확장시켜서 소설로 완성시켰다는 일화를 가끔씩 접했다. 기술이 발달해서 언제 어디서나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으니 기술을 사용하기만 하면 작가 비스무리한 언저리에 닿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핸드폰으로 글을 쓴 분들을 보면서 부럽고 놀라웠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놀라운 집중력이 부러웠고, 핸드폰으로 장문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차를 산 뒤로 대중 교통을 거의 안 타기도 하지만, 가끔 지하철에서 하나의 일에 몰두하거나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일을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버스에서는 멀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눈을 감고 있거나 노래를 듣는 게 최선이다. 핸드폰으로 글자 비슷한 걸 읽으면 바로 울렁거려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멀미는 안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 온도, 습도 때문에 도무지 집중하는 게 어렵다. 책을 읽으면 잠시 뒤에 다른 걸 보고 잇는 나를 발견한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끼적이는 일은 컴퓨터로 쓰면 더 빠르게 수정하면서 쓸 수 있는데 굳이 핸드폰으로 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몇 번 써보다가 그만뒀다. 완성된 글을 모니터로 퇴고 할 때와 스마트폰으로 퇴고할 때 느낌적인 느낌으로 차이가 있기도 했다. 모니터로 봐야 문단 사이의 통일성이 더 잘 보였다. 스마트폰은 문장을 보기에 좋지만 적응이 안돼서 그런건지 전체를 파악하는게 어려웠다.


그러다 처음으로 글 한편을 스마트폰으로 완성했다. 새벽 4시에 눈을 떠서 누운 채로 몇시간 동안 문자 보내기로 우다다다 한 바닥을 썼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일이 없다.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씩 칼럼을 기고하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밀린적이 없었다. 그게 당연했는데 내 멋대로 칼럼 마감 시간을 변경해서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새해가 되고 편집부에 글이 쌓였고(?) 칼럼이 며칠씩 늦게 신문에 실렸다. 그걸 보고 하루 정도는 마감을 늦춰도 되겠거니 판단했다. 정해진 약속을 마음대로 바꿔 믿는 건 멍청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그렇다. 나는 멍청이였다.


이번 칼럼 마감 날엔 1박 2일로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했다면 칼럼을 미리 써서 송고하고 출발했을 거다. 이미 헛된 생각에 사로잡힌 멍청이는 그냥 출발했다. 하루 정도 마감을 미루고 다녀와서 써도 되겠거니 했다. 한참 밖에 있는데 편집부에서 정해진 날짜까지 글을 보내 달라는 당연한 마감 안내 문자를 보내셨다. 


낮에는 밖에 있었고,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저녁엔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이럴 땐 미래의 나에게 일거리를 넘기는 게 최선이다. 다음 날 오전 9시가 마감 시한이니까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글을 쓸 목적은 아니었지만 노트북도 챙겨가긴 했으니 I can do it!!을 외치며 12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지 새벽 4시가 되자 잠에서 깼다. 알람이 울리기 1시간 30분 전, 잠든지 3시간 30분 만이었다. 5시 반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다시 잘까 하다가 이대로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을 듯 했다. 칼럼을 끝내야 찜찜한 마음이 사라질 거 같았다. 노트북 타자를 치면 옆에서 자는 사람이 깰 정도로 방이 고요했다.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부터 2시간 30분 동안 무아지경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다행히 글감을 미리 생각해놔서 쓰기만 하면 됐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새벽이고 마감이 코앞이라 집중력이 샘솟았다. 덕분에 평소에 칼럼을 쓸 때보다 훨씬 빨리 글을 끝냈다. 퇴고도 여러번 해서 발송을 눌렀다. 누워서 글을 쓴 것도 처음이고 핸드폰으로 쓴 것도 처음이었다. 글이 이상할까봐 불안했는데 오전에 쓴 글을 확인하니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제 바빠서 글을 못 쓴다는 핑계는 댈 수 없게 되었다. 누워서 한 바닥을 썼으니 다른 극한의 상황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 경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려야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닌 듯하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환경도 탓하지 않을 거다. 번잡스러운 환경에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서 작가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겠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