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쭈욱 써 봅시다.
'출간, 기고 목적으로 텍스트칼로리님이 제안을 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에 등록하신 이메일을 확인해주세요'
제안 푸쉬창이 떴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출간, 기고 목적으로 제안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푸쉬를 봤을 땐 출판사에서 보낸 메일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작가가 되는 거야? 김칫국을 마시며 부리나케 메일을 열어봤더니, 브런치에 쓴 글을 어딘가에 게시한다거나 자비 출판을 말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몇 번 반복해서 받자 기대감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였다.
메일에는 "작가님의 글을 재밌게 읽었다, 책을 냈으면 한다"고 쓰여 있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라는 마음이 90,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10 정도 있었다. 편집자님과 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만나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니 드디어 책을 내는 게 실감이 났다. 함께 브런치를 운영하는 S는 계약이 끝나고 평소에 없던 텐션을 보였다. S는 계속 심장이 울렁울렁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고 했다. 둘이 연신 하이파이브를 하며 겨우겨우 집에 돌아왔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구독자가 천명 넘으면 책을 낼 수 있는 줄 알았다. 작가 신청을 하면서 이것저것 검색할 때 어디엔가 그런 내용이 쓰여 있는 걸 봤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구독자수와 출판의 상관 관계였다. '구독자가 천 명을 넘어가면 출판사에서 연락 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부지런히 써서 구독자를 모아라.' 브런치 초보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출판=1000명'이란 숫자가 입력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한 글이었다. 가벼운 댓글이 초보자의 마음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그 댓글이 구독자 천명을 모을 때까지 글을 써 볼 원동력을 만들어줬으니 이름 모를 분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이후에 구독자가 대망의 천명이 되었는데 연락은 커녕 감감 무소식이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인디언 기우제 마냥 계속 썼다. 소식이 없던 시절을 지나 결국 책을 내게 된 걸 보면 그 댓글이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편집자의 출간 제의를 받는 건 생각보다 더 짜릿했다. 일단 누군가 나의 글을 자세히 눈여겨 봤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기뻐서 내적 댄스를 췄다. '내 글 나나 재밌지'에 머물러 있다가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이나 댓글을 발견하면 행복해진다.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글이 재밌고 좋으니 출판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보자는 사람이 등장하면 오죽하겠는가. 글쓰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거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에는 글쓰기에 꼭 필요한게 등장한다. 바로 나보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이다. 실제의 내가 닭이라면 편집자는 나를 날개를 펼친 공작새로 봐주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운 좋게 나를 글신글왕으로 봐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즐기면서 쓰면 되고, 없다면 나타날 때까지 쭈욱 쓰면 된다.
하루에 출판되는 책이 수백여 종이고 한 권의 책을 내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아무나 쉽게 책을 내는 세상이라지만 그 아무나에 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 했었다. 내 이름이 쓰인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출판사에 글을 투고하거나 하다못해 브런치북 공모전에 신청조차하지 않았다. 큰 기대 없이 쓰다보니까 불현듯 출판이 다가왔다. 존버는 승리했다.
몇 달 뒤에 책이 나온다고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천지개벽하지는 않을 거다. 당장 가까운 지인이나 주변에 출판 사실을 알릴지 말지조차 결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는 쪽인데 막상 책이 나오면 동네 방네 떠들지도 모르겠다. 처한 상황에 큰 변화가 없을 걸 알지만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부푼 마음 가득 안고 목차 짜기에 돌입한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