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와 핫도그 Jun 28. 2021

샐러드를 산처럼 쌓아서 먹는다

밀프랩의 세계

나와 K는 나름 최선을 다해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꾸준한 운동을 위해 헬스 PT를 끝내고 복싱을 다닌 지 3개월 정도 되었고, 취침 시간도 하루 8시간을 꼭 지키려고 밤 10시 30분에는 잠에 든다. 건강을 위해 술/담배도 하지 않는다.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건강하기 위한 생활 습관들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K는 배란통에 시달린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식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되니 불 앞에 있기도 귀찮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요즘은 건강한 식사와 멀어졌다. 매일 장본 재료로 요리해서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배달음식과 외식으로 저녁시간이 채워지고 있다.


배달음식과 외식이 많아지면 두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 돈을 많이 쓴다. 둘째, 속이 더부룩하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다 보면 더부룩해진 배를 안고 잠들기 일쑤였고, 매운 음식을 먹기라도 하면 그다음 날은 한동안 장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배달은 일회용 쓰레기도 너무 많이 나온다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배달비를 생각하면 차라리 배달음식 보다는 포장이나 외식이 나은편이다. 하지만 하릴없이 귀찮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 앱을 열고 배달 앱을 누르고 있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소곱창을 먹었다. 소곱창은 나의 페이보릿 메뉴였는데 웬일인지 먹고 나서 불편하게 배부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제 건강한 생활을 위해 남은 건 단 하나, 음식. 식단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K와 함께 요즘 유행하는 '밀프랩(Meal Prep)'에 도전하기로 했다. 밀프랩은 식사(meal)와 준비(preparation)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일요일 저녁에 미리 그 주 저녁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놓고, 냉장 또는 냉동 보관을 하는 방식이다. 샐러드류로 밀프랩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여 우리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둘 다 체중을 감량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싱을 위해 건강한 벌크업을 노리고 있던 터라, 양을 적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멀찌감치 사라졌다. 일요일 저녁, 밀프렙을 위한 준비물을 적고 장을 보러 갔다. 우리의 장보기 리스트에는 당근, 샐러드용 채소, 샐러드 소스, 현미, 닭가슴살, 그레놀라, 크래미 등이 포함됐다.


장을 후다닥 보고 난 뒤에는 본격적인 밀프랩 준비를 시작했다. 지인에게 얻어온 감자를 팔팔 삶아서 으깨고, 마요네즈와 양파, 당근을 넣어 감자 샐러드를 만들었다. 첫 번째 밀프랩 준비 성공! 다음으로는 채소를 손질했다.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고, 샐러드용 채소들도 잘 분배했다. 달걀은 삶아서 흐르는 물에 식힌 뒤 냉장고에 넣어놨다. 크래미는 손으로 잘게 찢어서 락앤락 통에 넣었다. 현미는 물에 한참 불려놨다가 냄비밥을 했다. 5인분 정도의 분량을 한꺼번에 해놓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놨다. 이렇게 하니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는 삶은 달걀/크래미/닭가슴살/채소/감자 샐러드/현미밥 세트가 냉장고에 든든하게 자리 잡았다.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고 준비해놓은 식사를 시작했다. 각자 커다란 파스타 접시에 현미밥을 두 숟가락, 닭가슴살 한 덩이 절반, 달걀 하나를 넣고 크레미도 한 숟갈 넣었다. 거기에 양배추와 당근, 샐러드용 채소까지 올린 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감자 샐러드를 올렸다. 오리엔탈 드레싱을 두 바퀴 휘휘 둘러주니 저녁 식사 완성! 만들고 나니 욕심이 하늘을 찔러서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은 샐러드'다.


산만한 크기로 수북하게 쌓인 샐러드들. 이 많은게 내 뱃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배고픔을 달래려 허겁지겁 먹었더니 세상에, 그 많은 양이 다 내 위장으로 들어갔다. 한 톨도 남김없이 싹싹 먹었다. (야채가) 아삭하고 (그레놀라가) 바삭하고 (감자 샐러드와 닭가슴살이) 촉촉하니 아주 맛있었다. 동거인 K는 샐러드를 다 먹고도 배가 차지 않아 그래놀라 시리얼을 한 그릇 더 먹었다. 아직 냉장고에 남은 밀 프랩 재료들이 많아 이번 주는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을 듯싶다. 약간 걱정되는 건 벌써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당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매번 샐러드를 먹으며 식단 조절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리 한식 찌개가 땡겨도 일단 해놓은 밀 프랩들은 다 먹어야지. 다 먹고 나면 한뼘만큼은 건강해지겠지? 소도 풀을 먹고 살찐다던데, 밀 프랩 일주일이면 풀로 벌크업은 가능할 것 같다.




Written by. 토끼(토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