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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Aug 20. 2020

하루에 책 한권, 활자중독자의 탄생

42,195페이지도 1페이지부터


어쩌다 보니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은지 8개월이 지났다. 한 권을 다 못 읽을 때도 있는데, 많이 읽는 날에는 3~4권 읽어서 평균 하루 한 권 정도로 수렴하는 중이다. 가벼운 에세이에서부터 사회과학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다. 평일에는 퇴근 후에, 주말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많다. 


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이었으면 지금의 독서활동을 설명하기 쉬울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중독까지는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독서량은 평범한 수준이거나 그보다 겨우 윗 단계 정도였다. 꼬마 때는 집에 쌓여있던 과학 전집과 엄마가 읽던 소설집을 종종 읽었고, 중, 고등학교 땐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국화꽃향기>나 <가시고기>처럼 히트친 소설들. 문제집 읽느라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독서 토론 동아리를 접했지만, 여느 책 동아리가 그런 것처럼 책보다는 술과 교류가 우선인 곳이었다. 대학 내내 홛동한 동아리에서 책이 아니라 사람이 남았다. 직장인이 된 다음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책 읽는 것보다 사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쌓인 책들만 몇 백권이 넘었고 방 한칸이 책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활자 중독과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던게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매일 한 권의 책을 읽은 건 2019년 연말 무렵부터다. 그전까지 뜨문 뜨문 한달에 몇 권 정도의 책을 읽는 독서인으로 살다가 2019년 초 함께 공부하는 S와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관심분야인 페미니즘 책과 베스트셀러를 고른 다음 평소에 읽지 않던 재테크 책을 빌렸다. 재테크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서 고민하다가 친구가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해서 넣었다. 그때는 이후의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활자 중독의 시발점이 된 날 빌린 책들


예전에도 도서관에 다녔지만 그날따라 달라진 게 있었다면 평소에 자주 머무르던 인문, 사회과학 코너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살면서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던 자기계발, 재테크 관련 서가에 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책을 많이 읽게 된 이유도 '습관을 만드는 책'을 읽은 덕분이다. 덕분에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었고 독서력 자체가 향상되었다.


종종 활동하던 독서 커뮤니티에 1년 동안 42,195페이지를 읽는 챌린지가 있었다.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하는 심정으로 365일 동안 책을 읽는 도전이었다. 116페이지 정도를 매일 읽으면 1년 뒤에 42195쪽을 끝낼 수 있다. 3일에 한권 정도의 책을 읽는 셈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도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니까 일주일에 2~3권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신청비를 내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얼마 못가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3일에 한권이 만만치가 않았다. 


보통 시간이 나면 몰아서 책을 읽었다. 이 방식이 기존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독서 마라톤에 도전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전제 조건인 '시간'이 나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책을 한권도 못 읽고 끝났다. 나름 마라톤이니까 동네 산책 수준 단계보다는 좀 더 고오급 전략이 필요했다. 평소에 뛰던 구력이 없는 상태에서 풀 코스를 뛰려니 금세 나자빠졌다.


나중에 습관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의 내가 42,195페이지를 완독하기 위해서는 짧게라도 매일 읽는 습관이 필요했다. 하루에 한페이지라도 읽기 시작해야 100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한 페이지 읽는 건 껌이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많은 분량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알지만 시작이 어렵다. 자리에 앉으면 그날 정한 페이지는 순식간에 삭제인데 앉을 수가 없다. 이때 중요한 게 읽을 분량 정하기이다. 


하루에 얼만큼의 분량을 읽을지 정하는 건 본인의 마음이다. 정확히는 뇌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까지다. 갑자기 오늘부터 날마다 책 한권을 읽겠다고 결심한다면 3일까지는 열정으로 어찌어찌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3일 이후부터는 책과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확률이 높다. 한 페이지가 많다면 한 문단, 고작 그만큼이라도 읽는 습관이 정착되면 4만 페이지 넘는 양을 읽어낼 수 있다. 하루에 책 한권은 하루에 한 쪽부터 시작해야 한다. 초반에 나도 몇십 페이지 읽는 습관을 들인 다음에 천천히 분량을 늘려나갔다. 지금은 하루에 3~400쪽에서 많게는 천쪽이 넘게 읽는다.


죽기 전까지 부지런히 읽어도 좋은 책을 다 못읽을 거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빛나는 책들까지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는다. 어제도 읽었고 아마 큰 사고를 당하지 않는한 내일도 읽을 것이다. 독서가 삶의 일부가 되며 평범한 책 덕후는 활자 중독으로 진화했다. 활자 중독자의 삶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싶다.


written by 토핫(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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