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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핫 Sep 13. 2020

여성 2인 가구의 탄생

소파 옮기기부터 전등 교체까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 따뜻하고 안락했던 캥거루 주머니를 나와 공과금을 내고 주말엔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삶이 시작된 거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많이 알아보게 되는데, 나는 첫 직장에서 만나 지금은 함께 재테크 공부를 하는 K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 K는 성인이 된 이후로 줄곧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해온 이력이 있고, 나는 대학교 기숙사 생활과 짧은 시험공부 기간 반년의 신림동 월세 살이를 빼고는 자취 경험이 전무하다. 함께 지내고 알게 된 지 5년 차, K와 내가 함께 책을 읽으며 재테크에 관심을 가진 지 2년 차, 생각보다 이르게 독립의 길을 걷게 된 나에게 K는 선뜻 손을 내밀어 줬다.


너, 나의 가족이 되어라!

자취 경력 15년 차 여성, 자취 경력 0.5년 차 여성이 합해진 여성 2인 가구의 탄생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원래 K가 살고 있던 집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라 짐은 최소화했다. 내가 오면서 K는 집에 있는 안 입는 옷, 안 쓰는 물건들을 한차례 정리했다. 잘 안 읽는 책들을 알라딘에 팔고 안 입는 옷과 신발은 헌 옷 수거함에 갖다 놓기를 여러 차례, 내 짐이 들어갈 공간이 얼추 나왔다.


  내가 K의 집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거실 공간을 책 읽고 글 쓰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결의했다. K의 집(이제 우리의 집)은 욕실 1개, 방 2개의 구조인데 특이하게 안방이 넓고 거실이 폭이 좁다. 평소에는 소파를 놓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내가 집에 들어가면서 과감히 거실의 소파를 버리고 낮은 식탁을 놓기로 했다. 여러 브랜드의 식탁을 고민했는데 요즘 가장 핫한 식탁은 무인 양*의 리빙 다이닝 테이블이다. 식탁의 높이가 기존 식탁들보다 조금 낮아 편안하다는 평이 참 많았다. 특히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집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이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시국이 이러하고(일본 불매운동) 가격이 테이블과 의자까지 합하면 150만 원을 넘어가는 고가의 상품인 것을 알고 마음이 팍 식었다.


  두 번째로 관심이 생긴 테이블은 한*의 낮은 식탁이었다. 합리적인 가격과 나쁘지 않은 후기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한* 또한 사내 직원의 성폭행 관련 이슈가 있었던 터, 다른 대안이 있다면 굳이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게 레이*가구의 낮은 식탁이었다. 합리적인 가격! 마음에 드는 디자인! 평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무료배송?! 과감히 결제하고 책상이 오기를 기다렸다.


소파를 옮길 수 있을까

문제는 바로 거실의 소파였다. 거실 소파는 3인용으로 K가 이케아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한 소파였다. K가 물건을 아껴 쓰는 편이라 새 것에 다름없었는데, 식탁이 들어오려면 우리의 인테리어 미관상 소파님께서 퇴장을 해주셔야 했다. 곤도 마리에 식으로 '잘 가, 고마웠어' 하고 소파에 인사까지는 마쳤는데 문제는 어떻게 소파님을 퇴장시키는가였다. 소파는 이사 올 때 창문을 통해 사다리차로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는 사다리차를 쓸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엘리베이터를 태워서 내려보내야 한다. 소파는 우리 둘이 들고 땀을 100방울 정도 흘리면 이동할 수 있는 무게였지만, 문제는 소파의 길이와 폭이 문과 복도에 낄 정도의 사이즈라는 거였다. 가구 수거 업체를 알아보니 가구는 돈이 되는 돌침대만 무료 수거가 가능하다고 했고, 비용을 지불하면 15만 원 정도가 지출되는 상황이었다.


소파가 문에 낀 슬픈 현장


  15만 원을 우리의 노동력으로 메꿔보자고 결심한 뒤 우리 둘은 유튜브를 보며 각종 무거운 가구 옮기기 영상을 섭렵했다. 무거운 가구를 옮기는데 필요한 준비물은 목장갑(목장갑이 없으면 손이 나가기 딱 좋다), 안 쓰는 이불 같은 천이다. 소파를 집에서 현관으로 옮길 때 이불을 소파 밑에 깔고, 한 사람은 이불을 천천히 당기면서 다른 한 사람은 소파 반대편에서 살짝 들어준다. 그렇게 하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소파를 현관까지 운반할 수 있다.


  우리의 난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는데, 소파가 현관문에서 복도로 나가 지지가 않았다. 세우고 기울이고 들고 측면 돌파를 시도하고 이것저것을 다 해봤는데 땀이 뻘뻘 나도록 소파가 현관과 복도 사이에 껴서 움직이지 않았다. 흰 티셔츠가 땀으로 젖고, '아 이제는 포기할 때인가'를 마음속으로 생각할 즈음 K가 PT를 받으며 단련된 체력과 강인한 팔 힘을 이용하여 소파를 밀었다. 기적처럼 소파가 현관문에서 빠져나와 복도로 탈출을 성공했다. 중간에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소파를 들고 숨 막히는 적막감을 참기만 하면 이다음부터는 쉬웠다. 소파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기고, 엘리베이터가 왔을 때 소파를 세워서(엘리베이터 천장에 닿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탑승시킨 뒤 다시 기울여서 소파를 빼냈다.


  무사히 엘리베이터 탑승을 마친 소파를 둘이 들고 폐기물 처리장까지 옮기면서 우리의 소파 옮기기 대소동은 막 내렸다. 소파를 옮긴 뒤 왜 소파 수거 서비스가 15만 원인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노동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도 성인 남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파 옮기기를 여자 둘이서 해내다니 몹시 기뻤다. 이 체력을 만들어준 PT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한다.


  우리가 폐기물 처리장에 내놓은 이케아 소파는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다른 가족의 품으로 갔다. 이틀 만에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면 누군가 소파의 쓰임을 찾으시고 가져가신 듯싶다. 나름 상태가 좋아 버리기 아까웠는데 해피 엔딩이다.


  소파 옮기기를 성공하고 15만 원을 벌었다는 성취감에 젖어 다음 목표로 거침없이 나아갔다.(소파를 옮길 수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낮은 식탁 위에 거실 조명을 분위기 있는 펜던트 등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라탄 디자인의 펜던트 등을 이케*에서 구매했다. 조명을 가는 것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차서 이번에도 유튜브 선생님께 1:1 과외를 받고 과감히 도전했다. 조명 가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래 있던 조명을 내리고, 새 조명을 전선에 연결해주면 끝이다. 혼자 하기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한 명이 받아주고 들어주며 조명을 교체하니 금방 했다.




완성된 모습의 거실

그렇게 2인 가구의 거실이 완성됐다. 노란 라탄 조명 아래 널찍한 낮은 책상을 놓고, 그 위에는 우리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로 동네 꽃집에서 2만 원어치 아름다운 꽃을 장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새 식탁과 조명, 그리고 아름다운 꽃은 자신의 몫을 다 해내고 계시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돌김, 부추, 우엉>, <합리적 비혼 주의자로 잘 살게요/홍경희>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그려내는 책들이 많아지고 있다.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정상가족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삶을 그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K와 내가 2인 가구로 묶이게 된 이상 우리는 이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뭐 별거 있나? 한 지붕에 살고 같이 밥을 먹으면 가족이다. 새로운 가족과 멋진 거실에서, 나의 독립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Written by. 토끼(토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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