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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Aug 11. 2020

브라이덜 샤워, 축의금, 얼마나 해야 하지?

이십 대 후반, 지인들의 결혼 러시가 시작됐다!


브라이덜 샤워 후 아름다운 사진이 남았다.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만 두 명이다. 다른 친구들의 결혼 소식도 속속들이 들려온다. 결혼 소식을 듣고 청첩장을 받으면 울컥하기도 하고, 내 오랜 친구가 가정을 꾸리게 된다니 뭔가 묘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밀려온다. 그리고 소중한 청첩장을 가방에 고이 모셔서 집에 돌아오면 고민이 시작된다.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하지?'


당장 커뮤니티의 여론부터 살펴봤다. 축의금이라는 검색어로 서치 해보니 몹시 많은 글들이 있었다. 대게 질문은 이런 내용이다.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군데, 축의 얼마 해야 해?' 

'일 년에 한 번 보는 친군데, 축의 이 정도 하면 적당할까?' 

'친한 친구 집들이 선물도 할 거고 축의도 할 건데, 축의 이 정도면 괜찮나?'


다들 눈치 보며 내가 하는 금액이 적당한지 물어보고 있었다. 흥미롭게 댓글들을 눌러보니, 세상에. 친한 친구라면 20만 원, 30만 원이 넘게도 한다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러면 20만 원은 넘어야 하는 건가? 내 한 달 생활비가 40만 원인데 이거 가능한 건가? 이번 달에 친한 친구 2명이 결혼하는데 그럼 나는 한 달 생활비가 축의로 나가는 건가?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친한 친구 무리가 4개 정도 있고, 2개 무리는 7~8명, 3개 무리는 3~4명 정도 친구들이 있는데 그럼 총 25명에게 20만 원씩 축의를 내면 500만 원이겠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자 부담감이 명치 부근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축의금은 '품앗이' 문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옛날에 농사지을 때 서로 도와주던 것처럼,  서로의 큰 경사에 품앗이해주며 내가 축의를 냈으면 다음 내 결혼식에서 돈을 받는 느낌인 거다.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나는 축의 했던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가 많아진다. 친한 지인 중 한 명은 나중에 40대쯤 비혼식을 열어 돈을 수거하겠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우스갯소리지 실제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돌려받는 돈이 아니라 나가는 돈의 개념이 돼버린다. 이쯤 되니 부담감이 목정도 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 고민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넘어야 할 다음 퀘스트가 있었으니, 바로 '브라이덜 샤워'였다. 브라이덜 샤워는 신부가 결혼하기 전 신부 친구들과 모여서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건데, 보통 인스타그램에 신부와 신부 친구들이 공간을 대여해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남기곤 한다. 취지 자체는 참 좋다. 결혼도 축하하고, 모여서 추억의 사진도 남기는 거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을 대여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럼 2차 비용의 문제가 생긴다. 보통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해주기도 하고, 결혼할 남편분이 와서 비용을 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럼 남편분은 무슨 죄지? 자기가 딱히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강제 지출을 해달라고 하기도 참 미안한 일이다. 만약 남편분이 와서 비용을 낸다면 그 비용만큼 우리가 축의를 더 하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즉슨  브라이덜 샤워를 한다 -> 축의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오면 누구를 위한 브라이덜 샤워인지 알쏭달쏭 해진다. 고민거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퀘스트 '집들이 선물'까지 마쳐야 이 모든 고민의 여정이 끝난다. 


옛날 옛적 화제였던 개그콘서트 '애정남' 코너가 생각난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석 양보하기'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나야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냐' 등 헷갈리는 질문에 "딱 정해드립니다잉~"하며 명쾌한 답을 내려주던 코너다. 축의금/브라이덜 샤워/집들이까지 고민하다 보니 애정남이 나타나서 딱 정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애정남이 정해주지 않을 테니, 별수 없이 이제는 나만의 기준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단 나의 월급 수준에 맞게 축의금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남들은 얼마 하는지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내 예산 안에서 가능한 금액을 정했다. 또 결혼식 참석의 기준도 세웠다. 나와 직접 만나서 청첩장을 전달해주는 친구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대신 그밖에 브라이덜 샤워나 집들이 선물은 내 마음 가는 대로 열어놓으려고 한다. 훗날 나의 월급님께서 좀 더 많이 올라주신다면 그때는 이 기준도 내 오른 월급에 맞게 변화할 여지는 있겠다. 


얼마 전 두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참석한 결혼식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친했던 내 친구가 어엿하게 버진로드를 밟으며 입장하는 걸 보니 눈물이 퐁퐁 샘솟았다. 내가 결혼하는 당사자보다 더 울어서 아주 진상이었다. 축하하는 마음만 들고 갈 결혼식에 참석하기 전 이런저런 고민이 자꾸 든다니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루빨리 이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결혼식에, 손수건을 잘 챙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written by 토핫(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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