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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Oct 25. 2020

여자 둘이 사니까 이런게 좋네요

비혼 메이트와 유쾌하게 살아가기

꽃을 좋아하는 식구가 오고 나서부터 집에 늘 꽃 향기가 난다.


친구이자 스터디 메이트였던 S가 동거인이 된지 두 달이 되어간다. 함께 살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좋아'라고 답했다. 수 년 내로 비혼 메이트로 살아보자고 종종 이야기 했지만 빨라도 내년 중순 정도를 예상했었다. 예상보다 동거일이 훨씬 앞당겨 졌음에도 곧바로 긍정적인 대답할 수 있었던 건 지난 5년 동안 S와 친하게 지내며 우리가 비슷한 가치관과 성격을 가졌다는 걸 확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확신이 있는 상태였으니 행동으로 옮기기 쉬웠다.


주변에 S와 함께 산다는 걸 알리니 재밌는 반응이 돌아왔다. 결혼 8년차 7살 외동딸을 키우는 직장동료 K는 내가 여자 동거인과 함께 산다는 걸 듣자마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메신저 창에 '너무 부럽다', '나도 여자랑 살고 싶다', '너무 부러워', '나도 여자랑 살고 싶어', '나도 여자랑..'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방점이 '여자'에 찍혀있었다. K는 드물게 남편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이 싫지는 않지만 종종 귀찮은 듯 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고됨이 느껴져서 짠했다.


대학 동기 J는 친구와 함께 살면 너무 재밌을 거 같다고 축하해줬다. J 역시 아이가 6살이라 24시간 아이에게 신경을 쏟는 상황이다.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주지만 주 양육자는 J이다. J 자신은 외로움을 못 견뎌서 일찍 결혼했지만 나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안해도 된다고 자주 말한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걸 기뻐해주는 걸 보니 J가 내심 혼자 사는 나를 걱정했었나보다. 


내게 동거인이 생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축하하고 기대해준 만큼이나 S와 함께 살며 아직까지 단점을 느낀 적이 없다. 그에 반해 장점은 차고 넘친다. 경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정서적 안정, 생활습관 등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올라갔다. 멘탈이 건강한 초긍정주의자인 비혼 메이트와 동거하며 인생이 긍정적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느낀다. 주변에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경제 파트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S가 동거인으로 오고 공동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걷어서 식비와 공과금 등을 처리한다. 덕분에 내가 쓰던 생활 비용이 절반으로 줄었다. 원래 고정적으로 들어가던 아파트 관리비, 공과금 등을 S와 함께 내며 고정 지출이 반으로 줄었다. S와 함께 쓴다고 공과금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 수도 비용이 고작 만원 정도 올라갔는데 내가 내는 돈은 절반이 되었으니 S에게 늘 감사하는 부분이다.


초반에는 반찬을 한가지 정도 했는데 이제는 두 세가지를 동시에 한다. 요리가 발전한다.


또 달라진 점은 식사를 화려하게 챙겨먹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식재료를 사오면 냉장고에 넣어 둬도 금방 상해서 인스턴트나 레토르트를 자주 먹었다. 반찬을 사도 마찬가지였다. 요리를 하기엔 혼자 열심히 음식을 하고, 먹고, 치우는 과정이 귀찮아서 간단하게 챙겨 먹었다. 이제는 S와 함께 요리하고 (주 요리사는 S이다) 설거지는 둘 중 누군가가 하게 되니 요리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식재료도 달라졌다. 동물 복지 계란, 신선한 채소, 제철 과일 등을 구비 해놓고 먹는다. 어깨 너머로 S가 요리하는 걸 보며 나도 요리 꿈나무가 되었다.  


새롭게 생긴 생활습관은 홈트다. 집에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다. 혼자 집에 있을 때 홈트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헬스 피티를 쉴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운동을 푹 쉬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세 번, 땀을 흠뻑 흘리는 강도로 꾸준히 운동한다. 내가 저녁을 먹고 늘어져 있으면 S가 주섬주섬 홈트 도구를 꺼내온다. 가끔은 내가 열정을 보이며 운동 준비를 하는 날도 있다. 피티라는 강제성이 없어진 상태에서 S와 나는 서로의 좋은 트레이너가 되었다.  


다른 소소하지만 강력하게 좋은 점으로 청소가 편해졌다. 21평 아파트를 혼자 청소할 때는 참 어렵게 겨우겨우 청소했는데 둘이 나눠서 하니까 할만해졌다. 각자 눈에 띄는 더러운 곳을 전담해서 청소한다. 나는 화장실이나 부엌, S는 창틀이나 문틀을 주로 한다. 빨래는 가득 찼다 싶으면 발견한 사람이 돌린다. 건조기에 넣고 꺼내서 개는 건 함께 한다. 가끔 현관이나 베란다를 원하는 사람이 닦는다. 


집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구역의 청소는 올해 5월에 큰 결심하고 구입한 효녀 로봇청소기가 한다. 이 친구 덕분에 청소로 S와 얼굴을 붉힐 일이 전혀 없다. 로봇 청소기는 사랑이다. 강력 추천!! 각자 더러움이 느껴지는 곳을 가끔씩 닦고, 로봇 청소기가 매일 쓸고 닦아주면 집에서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청소는 동거인과 자주 싸우게 되는 원인이니 로봇 청소기든 가사 도우미든 미리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여자들끼리 살면서 가장 중요한 치안 문제가 남아 있다. 우리는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보안이나 치안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몇 년째 살면서 검증한 매우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라 안심하고 산다. S의 어머님이 집에 놀러 오셔서 둘러 보시고는 이곳에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집을 옮기게 되더라도 비슷한 분위기의 동네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S와 매주 가족 회의를 연다.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생겼는데 감정이 상한 채로 쌓일까봐 일주일에 한번씩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한 주 동안 각자 집안일에 기여한 걸 생색내고, 다음 주에 같이 저녁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 스케줄을 공유한다. 아직까진 서로 회의에서 말할 만큼 속상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 회의가 큰 도움이 될 거다. 


식구는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요즘은 멀리 떨어져 사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식사를 공유하는 '식구'인 S가 더 감정적으로 친밀하게 느껴진다. S와 사는 두 달 동안 느낀 좋은 점들은 위에 적은 것보다 훨씬 더 많다. S가 나만큼이나 동거 생활을 긍정적으로 느끼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가끔 물어보면 만족한다고 대답하고 별다른 불만 사항이 없으니 내 식대로 부풀려서 받아들여야겠다. S도 동거 생활을 매우 행복하게 하고 있는 걸로!!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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