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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Nov 04. 2020

비혼을 꿈꾸는 사람에게 필요한 세 가지

동네 친구, 소비 습관, 체력이 필수

삼십대 중반, 비혼으로 사는 오늘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올해는 직장에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퇴근 후에 녹초가 되지 않으니 남은 기력으로 책 읽고 운동을 할 수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다. 미혼, 비혼인 친구들과의 관계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도 무척 잘 지낸다. 문제는 이런 만족이 지속가능하냐에 달려있다. 지속 가능한 비혼 생활, 지속 가능한 여성 공동체는 요즘 나의 지대한 관심사이자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다.


현재의 만족을 10년 뒤, 20년 뒤까지 가져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현재 비혼 생활을 구성하는 것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추려 보니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1) 비혼 메이트나 동네 친구, 2) 돈, 3) 체력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비혼이 아니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1번 동네 친구 유무 정도 되겠다.



동네 친구들과 오른 인왕산. 야간 등산도 재미있다.


동네 친구가 비혼에 미치는 영향


나에게는 비정기적으로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 모임이 있다. 대학 다닐 때 동아리를 함께 했던 후배 B와 J. 알고 보니 나의 같은 과 후배였던 반려인 S가 결합된 여성 4인 파티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대학 선후배 모임이 되었다. 가까운 동네라고 하기엔 B는 차로 25분, J는 차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다른 시에 산다. 각자 차를 몰기에 거리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만남에서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의지다.


모임의 이름은 '건.배.클'. 건강 배트민턴 클럽의 줄임말이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가끔 모여서 술을 마시는 느슨한 모임이었다. 예전보다 부쩍 자주 만나던 작년 중순쯤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모임을 결성했다. 당시에 J가 본인이 열심히 치던 배드민턴을 강력 추천해서 자연스럽게 운동 종목이 정해졌다. 야심차게 시작한 건배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오른쪽 어깨에 석회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등산과 맛 기행으로 전향한다. 모임의 하루 일정에는 운동한 시간 만큼 누군가의 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꼭 포함되어 있다.


네 명 모두 비혼인 건 아니다. 확고한 비혼인 나와 S, 현시점에서 강성 비혼인 B, 남자친구와 언젠가 결혼하고 싶은 미혼 J가 골고루 섞여있다. J를 제외한 세 명은 앞으로 근거리에 살거나 때로는 한 집에 살면서 서로의 인생에 참견하기로 했다. 한집에 살고 있는 S와 지척에 사는 B가 가족의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하면 든든하다. 이런 울타리는 비혼 생활에 꼭 필요하다.  


재밌는 건 내년 1월부터 B와 남자친구가 있는 J도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J는 몇 년 내로 결혼할 생각이 없기에 B의 동거 제의에 선뜻 동의했다. 나와 S가 여자 둘이 사는 일의 장점을 J와 B에게 부단히 영업한 결과이다. 친구 따라 강남가는 것처럼 J가 친구 따라 비혼하게 되려나.



혼자이기에 너무나 중요한 '돈'


 

나이가 들수록
돈 때문에 비굴해지고 비참해진다


나는 2년 전까지 입으로는 걱정 없는 척 욜로를 외치던 사람이었다. 밝고 쾌활하게 돈을 쓰고 다니면서 속으로는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이렇게 내일이 없이 돈을 쓰면 몇 년 뒤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남들은 돈을 모아서 집도 사고 저축도 한다는데. 수시 때때로 돈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 왔고, 그런 날이면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로또가 되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가 해 뜨는 걸 보고서야 선잠에 들었다.


속으로 불안해도 돈 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잘못들어 있던 소비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가계부를 쓴적도 없고, 내 월급이 대략 얼마쯤 되는지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다. S와 함께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면서 중요한 건 얼만큼 버는지가 아니라 소비습관이란 걸 깨달았다. 꽤 오랜 시행착오 끝에 계획된 금액 안에서 소비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전의 소비 패턴이 계속 유지 되었으면 곧 흑자도산하는 상황을 맞이했을 거다.


비혼으로 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돈이라고 생각했었다. <혼자 사는데 돈이라도 있어야지>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재테크 공부를 하다보니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소비습관이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늘어나면 남는 게 없다. 소비습관이 바뀌고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변하면서 종잣돈이라는게 모였다. 이 돈은 투자의 마중물이 되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소비 습관이 건강해야 나이들어서 비굴하고 비참하지 않을 수 있다.



네가 이루고 싶은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재밌게 봤던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가 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을 버텨줄 신체가 필요하다. 쉽게 피로하면 장시간 무언가에 몰두할 수 없다. 기분도 체력에 따라 급변한다. 매너는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삶의 디테일을 가꾸는데 체력만큼 중요한 게 없다.


비혼으로 산다는 건 주어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피곤하다고 누워있으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밥을 먹으려고 해도 밥차릴 기운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일을 해낼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저녁이 있는 삶도 퇴근 후에 기력이 남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간혹 너무 피곤한 날에는 밥 먹고 바로 잠들어 버려서 저녁이 날아가는데 그게 무척 아깝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일주일에 두 세번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자연스럽게 건강이 따라왔다. 허리디스크와 하지정맥류에 시달리던 게 싹 사라졌다. 쌓아온 체력 덕분인지 직장 생활도 덜 피곤하고 덜 짜증스러워졌다. 몸을 움직일수록 기력이 생기는 신기한 경험도 하는 중이다. 아직 매일 운동하는 중독자 수준에는 못 이르렀지만 언젠가는 주 7회 운동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 변화된 소비습관, 향상된 체력은 삶의 만족도를 이전보다 훨씬 올려놨다. 이대로라면 지속 가능한 비혼 생활, 지속 가능한 여성 공동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더도 말고 지금처럼 잘 지내며 장래희망을 놓지 않는 비혼 어른이 되어야겠다.  


written by 토핫(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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