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날 땐 세 가지를 떠올려 보세요

유리 멘탈을 보호하는 나만의 루틴

by 토끼와 핫도그

파사사삭. 이것은 유리로 된 나의 멘탈이 부서지는 소리다. 삼십 몇 년을 다혈질로 살면서 스스로를 강철 멘탈로 오해했다. 얼마 전에 깨달았는데 나는 외강내유의 유리멘탈 소유자였다. 겉은 쎈데 속은 취약한 인간이다. 다혈질이라는 건 주변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는 이야기고, 반응의 역치가 낮은 사람 치고 멘탈이 강한 사람이 없다. 속이 단단할 수록 나에게 오는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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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같은 성격이 내 몫을 챙기고 사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으나 정신 건강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 화를 내고 나면 머리가 띵하고 뒷목이 뻣뻣해진다. 화를 언제 냈느냐에 따라 하루를 완전히 망칠 때도 있다. 아침부터 성질을 내면 그날은 기분이 다운된 채로 흘러간다. 저녁이면 좀 나을텐데 대체로 열 받는 일은 오전에 생기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서 날 때부터 다혈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본성이 바뀌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온갖 감정, 마음과 관련된 책들에서 말하길 성격과 감정도 습관의 부산물이다. 고로, 부단히 연습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여러 곳에 읽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몇 개를 짜깁기 해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이모 저모로 쏠쏠하게 써 먹는 중이다.


최근에는 지난 주 금요일에 루틴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인사이동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없던 예외규정이 튀어나와서 발목을 잡았다. 평소 였으면 주말 전부를 날려먹을 막강한 스트레스였다. 가까스로 루틴을 하나씩 실행한 덕에 웃으면서 주말을 잘 지냈고, 야밤에 글까지 쓸 정도로 멘탈이 돌아왔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이득을 본다.


KakaoTalk_20201207_234551204.jpg 스트레스와 화를 떨쳐내기 위해 좋은 장소에 찾아가서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


화에서 벗어나는 루틴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분노에 허우적 대는 나를 건져낸 다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고,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글로 읽으면 너무 쉬워서 이게 무슨 루틴이야 싶지만 이성을 잃으면 앞이 까맣게 되면서 루틴이고 뭐고 기억나지 않는다. 이놈의 다혈질이 사람잡는다.


화가 날 때 첫번째로 떠올려야 할 것은 호흡법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주문이다. 이 주문의 이름은 '삼호흡 무지개'. 삼호흡 무지개는 세번의 심호흡과 일곱가지 무지개 색 물건 찾기다. 당장 미칠 것 같은 마음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을 실행해서 조금이라도 진정이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자신한테 맞는 방법이면 어떤 것이든 좋다. 내가 주로 쓰는 건 '심호흡 세번하기'와 '7가지 색깔의 물건 찾기'이다.


'심호흡 세번하기'의 첫번째는 호흡 때 숨을 들이 쉬고 내쉬는 자체에 집중한다. 두번째 호흡에서는 몸상태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예컨대 지금 '머리가 띵하고 어깨가 뻐근하다'처럼 서술이 자세할 수록 좋다. 세번째 호흡에서는 가장 바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호흡을 마무리한다. 세번으로 부족하면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반복한다. 심호흡을 하는 것만으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명상도 이런 깊은 호흡법을 기초로 한다.


'7가지 색깔의 물건 찾아내기'도 있다. 시야에 보이는 물건들 중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을 가진 것들을 하나씩 찾아낸다. 이런 방법들은 화를 불러일으킨 상황에 브레이크를 걸고 주의를 환기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까지 진행했으면 1단계는 끝났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두 번째는 스텝은 '사고 실험' 시간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종이에 쓰는 게 도움이 된다. 나에게 닥친 모든 상황이 문제처럼 보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핵심 문제가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행동에 옮긴다. 행동를 하면 복잡한 머리가 비워진다.


만약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문제 상황이 끝난 시점의 미래에 살고 있는 나를 소환한다. 6개월 뒤나 1년 뒤, 미래의 나에게 내가 겪을 가장 좋은 상황과 가장 최악의 상황을 묻는다. 운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가장 나쁜 상황이 보일지라도 해결책을 궁리할 시간을 벌었으니 훨 낫다. 엊그제 상황에서 최악은 인사이동 탈락이다. 그렇다면 익숙한 곳에서 1년 더 시간을 벌테니 크게 도약할 힘을 비축할 수 있다-로 결론을 내렸다. 아직 완전히 답답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한결 숨쉬기 편해졌다.


화 날 때 떠올려야 할 마지막은 스텝은 '운동'이다. 도저히 운동할 상황이 안된다면 집이나 회사 계단이라도 올라가는 걸 추천한다. 땀이 뻘뻘나고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몸을 움직이면 백퍼센트의 확률로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아무리 열이 뻗치는 일이라도 운동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도 숨가쁘게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다.


작년에 회사 일이 유독 힘들었을 때였는데 헬스장 덕을 톡톡히 봤다. 운동이 끝나고 샤워까지 하면 그야말로 뽀송한 기분으로 남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에 씻겨나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숨가쁜 운동을 한 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면 오늘 하루 나의 불쾌함이 다 씻겨 내려간다. 실제로 나의 반려인 S의 어머니는 '우울하거나 일이 잘 안풀린다고 느껴질 때에는 항상 샤워를 해라' 라는 격언을 널리 퍼뜨리시고 스스로 실천 중이시다. 효과는 보장한다.


글을 쓰고 보니 열반에 오른 사람 같지만 절대 아니다. 예전보다 덜 스트레스 받고, 덜 화내는 나를 보면서 약간 성장했다고 느낄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유순해진다는데 연습하지 않으면 저절로 성격이 바뀌는 것 같지는 않다. 온화한 중년을 맞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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